한국일보

오늘을 즐기자

2001-01-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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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시언 <목사, 수필가>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이 서글프고 엄연한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무엇일까? 이마에 패는 주름살과 희끗희끗해지는 머리털은 한 사람이 늙어간다는 외적인 단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적나라하고 잔혹한 가시적인 증거 외에도 보이지 않는 단서는 허다하다.

한 인간이 서서히 과거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과거 지향성으로 치닫게 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는 자각증상을 잽싸게 감지해야 한다. 어째서 인간은 육체가 쇠잔하는 노년기에 접어들면 거의 예외 없이 과거에 집착하고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며 짙은 향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현재가 과거에 비교해 월등 덜 풍요롭고 덜 활동적이고 재미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왕성한 연령의 젊은이들이 미래지향성인 까닭은, 과거와 비교 현재가 훨씬 홀가분하고 신나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미래에는 더 진일보한 보랏빛 삶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판단 하에 미래에 가슴 두근거리며 설계하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그들이 인간 육체의 한계점을 서서히 감지하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요원하니까.


젊은이들은 미래지향적이고 노인들은 과거 지향적인 것이 어쩔 수 없는 일반적 추세이지만, 그 연륜에 관계없이 언제나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콩죽 마냥 짙게 깔린 희뿌연 아침안개를 헤치는 불확실의 시간, 그러니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오늘뿐이다.

오늘은, 현재는 신이 인간의 수중에 쥐어준 확실한 현찰이요 지불이 보장된 보증수표다. 기결되었거나 취소된 개인절수(個人切手) 같은 과거, 약속어음인 미래에 비해, 현재는 똑 소리나게 확실한 선물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현재’와 ‘선물’이라는 낱말이 둘 다 같이 ‘프레젠트(present)’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프레젠트(선물)인 확실한 프레젠트(현재)에 집착 몰두하는 것은 아름답고 보람되고 생산적이다.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 연령의 고하를 뛰어넘어 오늘이라는 이름의, 손안에 쥐어진 선물인 현재를 아끼고 사랑하며 땀흘려 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한가!

제정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기라; 그러니, 지금의 기회를 붙잡으라)이 메아리 되며 줄기차게 귓전을 맴돈다. 그는 이렇게 읊조린다. ‘오늘을 즐기고 내일에 기대를 걸지 말라!(Enjoy today, trust little to tomorrow;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미국의 코카콜라 회사의 전 회장 다이슨은 신의 프레젠트(선물)인 프레젠트(현재)를 사는 현대인에게 헌정하는, 현대인을 위한 잠언을 프레젠트한다.

찾을 수 없다고 체념함으로 당신의 인생에서 사랑의 문을 닫지 마시오. 사랑을 획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주는 것이고, 사랑을 상실하는 첩경은 그것을 움켜쥔 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은 그 사랑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지는 마시오.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감정은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고맙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시간과 말을 마구 남용하지 마십시오. 둘 다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랍니다. 끝간데 없이 원망하며 하염없이 한탄하며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이며… 그렇게 허송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너무 소중하며 너무 억울한 게 아닐까. ‘현재’라 불리는, 인간에 부여된 신의 귀중한 ‘선물’인 순간을 사랑하며 아끼자. 인생여정에 그 귀중한 시공을 당신과 함께 공유하며 함께 어깨를 나란히 걷는 소중한 이들을 보듬어 안고 자주 등 쓸어주며 뺨을 비벼보자.

우리에게 부여된 오늘 이 순간을 보람되게 활용, 삶을 보다 윤택하고 맛깔스레 요리해보지 않으시려는가.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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