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혼기의 재미

2001-01-27 (토)
크게 작게

▶ 이효순<풀러튼>

얼마전 오피니언란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라는 글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한 장면 한 장면이 어찌나 지난날의 내가 겪었던 언행과 일치되는지 나 혼자서 옛 생각이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50대 60대면 누구나 느끼는 현실이다. 그러나 60이 지나고 70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좀 젊어서 이야기다. 지금 내 생각을 몇자 나열하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쓸모 없는 존재야" “이제 더 이상 사회에 기여할 수 없는 연령이야” “그럭저럭 여생을 보내다가 죽어 가는 시기야” “노망의 시작이야. 치매가 아닌가” “건강이 나빠져 다른 사람들에 의존해야 돼”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시기야” 등 깊은 편견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년을 인생의 황금시대라 하고 싶다. 젊은 독자들은 코웃음이 나겠지만 해질 무렵 황혼의 휘황찬란함을 보자. 고해와 같은 긴 인생길을 단련과 인내와 노력과 애환으로 다진 강철같은 의지, 많은 경험과 학식, 기술, 세련된 감정, 온갖 질병과 싸워 단련된 질긴 골육이 있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개화기의 절정을 이루는 고상한 인격, 인자함까지 곁들인다면 이 어찌 황금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년기는 바로 삶의 완숙한 계절이라는 측면에서 성경에서도 늙은이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연철이 있느니라 라고 하였다. 또 칼 융이라는 유명한 심리학자도 노년기는 신체적인 능력은 감퇴되지만 정신적인 능력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그렇다고 지난 경험과 지식만을 자랑하며 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년기에는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손실이 따른다. 그 다가오는 문제에 대하여 첫째 질병의 가능성에 대하여 수용하는 자세를 준비하며, 둘째 장애의 문제에 대한 예방과 적용도 준비하고, 셋째 노쇠함의 두려움도 믿음으로 극복하여야 하며, 넷째 누구도 의존하지 말고 홀로 서기 연습을 하여야 되며, 다섯째 죽음을 준비하고 수용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청년이라고 완전하고 노인이라고 불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다. 요즘에는 죽는데 연령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 젊은이도 늙은이 같이 죽음을 맞는다. 세상은 변하여 노인들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노인에 대한 연구와 복지가 활발히 이루어져 미국에서는 늙어서도 적당한 운동을 하고 훈련을 쌓으면 힘도 쓸 수 있다.

열심히 살다보면 늙는데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릴레이 경주요. 내가 내 몫을 뛰고 배턴을 다음 경주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이것이 보통 재미가 아니다. 노인들이여, 2001년도 희망차고 활기 있는 여생이 되어 한인사회에 덕을 끼치고 젊은 자손에 본이 되는 삶이 되길 바라며 인생의 황금기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간구하기를 바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