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회에 돈이 너무 많다

2001-01-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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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정숙희 (특집부장)

올해초 남가주 한인대형교회들의 예산과 교인수를 조사해 보도했다(1월2일자 1면, 9일자 종교면). 20개 대형교회의 1년 예산만 합쳐보아도 6천만달러가 넘는다. 이곳에 산재한 800여개 한인교회가 세운 2001년 총예산은 얼마나 될까? 남가주 한인들이 1년동안 내는 헌금이 1억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추산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지난 해 모 교회의 장로가 교회 헌금으로 들어온 주식을 데이 트레이딩으로 날린 사건이 한동안 타운의 입방아에 올랐다. 세금혜택을 위해 주식으로 헌금한 사람의 의도도 한심하지만 주식으로 헌금이 들어왔다고 이를 주식에 재투자하도록 놔둔 교회의 결정도 기막히다. 더 놀라운 것은 문제가 터지자 이를 수습하고 돈을 메꾸기 위해 당회에서 헌금을 실시했는데 목표액 12만달러보다 많은 13만달러가 모였다는 것이다. 참 돈이 쉽고도 많은 것 같다.

LA의 또 한 교회도 작년 후반기 내내 돈문제로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모른다. 이 교회 원로목사의 인척인 재정부장이 방송장비를 사면서 수만달러를 착복한 사실이 드러나 교회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결국 그 돈을 물어내면서 사태가 일단락되었으나 교회 내부에서는 아직도 더 많은 비리가 있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합병을 추진하다가 무산된 두 대형교회의 경우, 한 교회가 재정부담의 타개책으로 다른 교회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무리한 건축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재원이 풍부하나 건물이 없는 다른 교회와의 합병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석달째 물의를 빚고 있는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도 전직회장의 공금유용이 발단이 됐다. 기독회관을 짓는다고 집회를 열고 수만달러 모금했는데 그 기금을 교협 재정에 포함시키지도, 차기 회장단에게 넘기지도 않고,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건물을 기독회관과 공동명의로 등록하면서 혼자 써버린 것이다.

한국서 매년 9월 열리는 주요 개신교단의 총회장선거가 금권선거로 얼룩져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곳에서도 해마다 연초에 열리는 남가주 목사회와 교협의 정기총회에서 회장후보들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의 회비를 대납하고 표를 사는 일이 고질적 병폐로 굳어져왔다. 지난 주 목사회 회장후보로 나왔다가 사퇴한 한 목사는 "회장에 출마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벌써 여기저기서 돈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며 선심성 금권선거에서 사퇴하겠다고 분개했다. 바로 그 전해 목사회 총회에서도 다른 후보가 꼭 같은 이유로 사퇴한 바 있다. 29일 총회를 갖는 교협은 총대회비 대납문제가 매년 하도 잡음을 일으키자 이를 없애자는 의도로 올해 회비를 50달러에서 10달러로 낮췄다.

교회와 관련된 모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교회에 돈이 너무 많다. 어느 대형교회는 건축을 다 끝내놓고 보니 금고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할 만큼 커서 벽을 부수고 집어넣은 후 다시 공사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부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한국교회의 재정구조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투명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속임수와 거짓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모든 비영리단체는 재정내역을 공개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는 교회나 단체가 많지 않다. 공개해도 애매모호하게 분류된 예산에 대해 교인들은 묻지 않는다.

문제는 그 돈이 모두 교회나 목사가 일해 번 돈이 아니라 헌금이라는데 있다. 교인들이 낸 헌금이 이렇게 쓰이는 것이다. 5달러, 10달러씩 모인 피같은 헌금이 일단 교회재정으로 분류되면 ‘예산’이란 이름으로 묶여져 거침없이 쓰여진다. 예산은 얼마나 비사실적인 숫자들로 이루어지는가. 각 부서는 좀더 많은 예산을 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그러다 연말에 남은 예산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일은 관공서나 기업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큰 교회일수록 예산 사용에 있어서 관대하고 교회 행사때마다 넘치는 음식, 일회용 컵, 접시, 냅킨등이 낭비되는 모습을 보면 돈에 대해 특별히 감정적이면서도 무책임한 한인들의 태도가 안타깝다.

3년의 공생애동안 철저하게 무소유했던 예수가 구약의 모든 율법을 압축해 들려준 신약의 계명은 단 두가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는 또 "여기 있는 형제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 두 귀절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마 교회는 그 일을 자기네들이 맡아서 한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들이 그 많은 헌금중 구제에 사용하는 부분이 극히 미미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돈이 교회를 망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재정공개나 외부감사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된다. 또 예산의 적어도 50%이상은 구제와 지역사회 봉사에 사용하기를 요구하는 수많은 목소리에 교회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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