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문대가 맥못추는 부시 내각

2001-01-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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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데이빗 브룩스, 월스트릿저널 기고)

부시 내각에 명문대 출신이 거의 없다니 걱정이다. 뉴아메리카 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는 예일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왔지만 각료중에서는 럼스펠드 국방이 프린스턴, 애시크로프트 법무가 예일을 나왔을 뿐 명문대 출신을 찾아 볼 수 없다. 클린턴 내각에서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었고 로즈 장학생 출신도 하나둘이 아니었다.

부시 내각은 또 서부 지역 출신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 담당보좌관은 덴버대 출신이고 폴 오닐 재무는 프레스노 스테이트, 돈 에반스는 텍사스대, 체이니 부통령은 와이오밍대를 다녔다. 각료가 될 뻔하다 밀려난 린다 차베스도 콜로라도대를 나왔다. 반면 그 후임으로 지명된 일레인 차오는 마운트 홀리요크와 하버드를 졸업했다. 콜린 파월도 뉴욕시립대 출신이며 최측근 보좌관인 칼 로브는 대학 졸업장조차 없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라면 백악관 근처에 얼씬도 못했을 것이다.

부시가 별 볼일 없는 대학 출신중에서 이만한 재능을 골라 낸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아이비 리그대학은 지난 200년간 미국의 지도자를 배출해 낸 곳이다. 여기를 나온 사람들은 성공하는데 필요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중 하나는 잘난 척 하는 것이다. 이들 학교 출신에게 조셉 콘라드라는 이름을 들려주면 ‘폴란드 태생이고 ‘Heart of Darkness’라는 책을 썼으며 이것이 ‘Apocalypse Now’라는 영화의 원작이다’라는 얘기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자기가 잘 모르는 주제에 관해 얘기하는 게 습관화돼야 하는 정부 관리들에게 잘난 체하는 것은 필수 요건이다.


거짓 섞인 겸손도 그중 하나다. 하버드 재학생에게 어느 학교 다니느냐고 물으면 ‘하버드?’라며 말끝을 올려 마치 그런 학교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투로 대답한다. 프린스턴 다니는 학생에게 출신교를 물으면 ‘뉴저지에 있는 학교’라며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말한다. 이 또한 워싱턴 생활에 필요한 태도다.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3등석을 타고 다니며 지난 달 수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봤다는 사실을 마치 큰 일을 해낸 것처럼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아이비 출신들은 세계가 소수 그룹의 음모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그런 사실을 좋아한다. 자신들이 바로 그 그룹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가 하는 일마다 세계적인 중요성이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클린턴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경기가 좋아져도 자기들 때문이고 범죄가 줄어들어도 자기가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또 돌발사태가 벌어져도 놀라지 않으며 마치 전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행동하며 게마인샤프트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어려운 말 쓰기를 좋아한다.

부시는 자신이 명문대 출신이면서도 이런 중요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기용하기를 거부했다. 워싱턴에서 유용한 재주는 기업의 순익증가등 구체적인 결과로 성패를 재는 현실 세계에서는 소용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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