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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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편견 언제까지인가

2001-01-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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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은진<코스타메사>

얼마전 어떤 분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화제가 내가 평소에 존경하고 있는 A씨에게 미쳤을 때였다. 갑자기 그분의 안색이 달라지더니 "그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구" 하며 소위 전라도 사람들이 듣고 있다는 평판들을 모두 A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혀 멍하니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설사 A씨가 그가 생각하는 대로의 평판을 들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자. 왜 하필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가. 그럼 전라도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란 말인가. 친정 아버님이 공무원이시다보니 어린 시절, 나는 여러 지역을 전학 다녀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갔을 때였다. "서울내기 다마네기 맛좋은 고래괴기" 이것이 늘 나를 따라다니던 조롱의 노래였다. 제주도로 갔을 때는 ‘육지년’이 내가 들어야 했던 별명이었다. 육지에서 왔다고 해서였다. 부산에서 살다가 인천으로 갔더니 ‘경상도 문뎅이’가 왔다고 다들 나를 따돌렸다. 아마 지역 차별의 곤욕을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프게 당한 사람도 많지 않으리라.

재작년 가을이었다. 10년 동안이나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고시절의 친구였던 그녀는 어느 해인가 국전에 입상하고서는 화실을 차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뉴욕에서 전시회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나를 찾기 위해 여러 사람을 거쳐야 했다고 했다. 신문을 보니 J에 대한 평이 굉장했다. 나는 그런 굉장한 예술가가 나의 친구이며 더구나 10년씩이나 연락두절이었음에도 나를 찾아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들의 우정은 늘 그녀가 주도하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생활에 쫓긴다는 이유로 나는 전에도 J가 세번쯤 편지를 보내면 겨우 한번이나 보낼까말까 했다. 실낱같은 우정이 겨우겨우 이어져갈 무렵, 언젠가 한국에 나가 만났을 때였다. J는 "앞으로 10년까지만 내가 너에게 절개를 지킬테니께 그런 줄 알어. 그런 담엔 난 모른당께" 라고 내게 협박(?)을 했다. 그녀는 전라도 말을 바꾸려고도 않고 누구 앞에서도 거침없이 사투리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 10년 동안 나는 그녀에게 신실하지 못했다. 매번 오는 편지에 답장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때인가부터 J로부터도 더 이상 편지가 없었다. 나는 그녀가 말한 ‘10년 절개’의 의미를 가끔 생각해 보곤 나의 불성실함을 탓할 뿐이었었다.


그런데 J는 10년, 아니 돌이켜보면 30년을 한결같은 사랑을 가지고 우리의 우정을 지켜오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지금은 신문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옛날과 똑같은 사랑과 사투리를 가지고. 그런데 그녀는 전라도 사람인 것이다. 과연 그녀에 비해 전라도 사람이 아닌 내가 더 신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J 외에도 내 주변에는 전라도 사람으로서 참으로 신실하신 분들이 많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이 아닌데도 얼마든지 나쁜 평판을 들어야 할 사람도 많다. 전라도가 고향이 아닌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그 사람이 나빠서 그렇고, 전라도 사람이 잘못하면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더구나 지역감정이란 눈 씻고 찾을래도 없는 이 광활한 미국 땅에까지 와서 조그만 내 조국, 어디에 그렇게 첩첩이 쌓인 감정이 많아서 너는 저기 동네 사람, 나는 여기 동네 사람, 이러며 동포들끼리 헐뜯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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