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미 이산가족

2001-01-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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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한국정부가 발표한 미주 한인 인구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수는 200만명이 좀 넘으며 그중 불법체류자수도 20만명에 가까운 것으로 돼 있다. 미국에 사는 한인중 10명에 하나가 합법 체류 신분이 없는 셈이다. 특히 남가주는 영주권자 33만, 시민권자 15만, 대부분 불법체류자인 기타 11만으로 불법체류자 비율이 매우 높다.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사연은 여러 가지다. 미국 건너 올 때부터 아예 돌아가지 않을 셈으로 온 사람도 있고 와서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비자가 만료된 경우도 있다. 불법체류자중 가장 딱한 케이스의 하나가 부부 한쪽은 영주권자인데 다른 쪽이 불법체류자인 경우다. 명절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 상을 당해도 한국에 함께 갈 수 없다.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못받는 것은 물론 항상 추방과 생이별의 위협 속에 살아야 한다. 최근까지 1년 이상 불법체류자로 지낸 사람은 무조건 10년간 한국에 나가 살아야 영주권 신청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부부가 헤어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신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부부간에 체류 신분이 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영주권자가 한국에 가서 결혼을 한 후 유학이나 관광등 편법으로 배우자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관광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 신분으로 들어와도 대기기간이 워낙 길어 합법 체류 신분을 잃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법을 지켜 제대로 수속을 밟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과거 1~2년이면 되던 영주권자 배우자 초청이 이제는 5년 정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다. 그것도 일이 잘 풀렸을 때 얘기고 ‘서류가 미비하다’, ‘재정보증을 다시 해 와라’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7~8년 걸리는 케이스도 하나둘이 아니다. ‘허니문 베이비’를 낳은 신혼부부 가운데는 애가 유치원 들어갈 나이가 되도록 부부가 재결합하지 못하고 이산가족으로 지내는 경우까지 있다.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에서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뒤늦게나마 작년 말 이같은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법개정이 이뤄져 불법체류자도 벌금만 내면 미국에서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고 3년 이상 헤어져 산 영주권자 배우자는 입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관한 전화문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실효를 볼 수 없다는 게 이민법 관계자들 얘기다. 연방 이민국은 하루 속히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으로 사는 부부들의 한을 풀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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