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0년의 인물’은 아들 아닌 아버지 부시

2000-12-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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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위원

극맹은 중국 전한(前漢)시대 사람이다. 서민의 신분이었으나 제후들 사이에도 그 이름이 높았다고 사기(史記)는 기록하고 있다. 한번 친교를 맺으면 결코 신의를 저버리지않고 어려운 사람을 끝까지 돕는 임협의 행실때문이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문상차 먼 곳에서 모여든 수레만 천여대나 되었다고 한다. 효경제(孝景帝) 3년 오(吳)·초(楚)등 7국이 반란을 일으켰다. 태위 주아부는 반란군 토벌 장군이 되어 대군을 모으기 위해 하남으로 가던 도중 극맹을 만나자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극맹을 자기편으로 끌어넣지 않았으니 오·초의 무리들은 큰 일을 해낼수 없다는 것을 능히 알 수 있다"

케네디, 록펠러, 루즈벨트, 그리고 부시 집안등을 미국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왕조(王朝)라고 불렀다. 이 집안들은 대대로 정계 거물을 배출하면서 허다한 인물을 길러낸 명문이기때문이다. 부시 집안 역사가 그 중 가장 짧다. 그러나 ‘정치적 왕조’가 지녀야 할 기본 요건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일이 그 요건이다. 그럼으로 해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 부시 가문은 왕조로서 다른 명문들을 제치고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할아버지에서 손자, 3대에 걸쳐 두명의 대통령, 한명의 부통령, 두명의 주지사, 한명의 연방상원의원, 한명의 연방하원의원을 배출했다. 이 부문에서 미국사상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 부시 왕조의 수장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다. 그가 평생 쌓아온 인맥이 부시 왕조의 백그라운드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인중 가장 발이 넓은 정치인을 꼽는다면 단연 부시다. 그가 ‘퍼스트 네임’을 부를 정도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유력인사만 최소한 수만명에 이른다. 한마디로 ‘부시 인맥’을 빼놓고 오늘의 미국 정치를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다.


부시 인맥은 국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스페인 국왕에서 중국의 실력자에 이르기까지 그 인맥은 가히 전 지구적이다. 중국 정부가 차기 주미대사로 내정한 사람도 부시 집안의 오랜 친구다. 중국 외교부 부부장 양치에가 바로 그로 70년대부터 친교를 맺어온 사이다.

2000년 미대통령선거는 이 부시 왕조의 파워가 유감없이 발휘된 선거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예선에서 연장전에 이르는 대장정의 고비마다 부시 왕조의 저력이 드러난 선거였다. 또 위기의 순간 전세를 뒤집고 최후의 승리를 이끌어 낸 막후의 노련한 사령탑은 바로 다름 아닌 왕조의 수장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였기 때문이다.

부시 왕조는 여러 면에서 엄청난 파워를 과시했다. 자금 동원력이 그렇다. 조지 W 부시 개인 이름으로 모은 정치 헌금만 1억달러를 훨씬 넘는다. 막강 커넥션을 자랑하는 부시 집안이 아니면 엄두도 못낼 사상 최대의 거액이다. 인맥 동원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당내 예선이 끝나자 조지 W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인물이 딕 체니다. 그는 한때 대권후보 반열에도 오른 정계의 거물. 이어서 콜린 파월, 노먼 슈와츠코프등의 지원 포격이 뒤따랐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걸프전의 영웅들이다.

부시 왕조의 네트웍이 진짜 힘을 발휘한 게 바로 연장전에서다. 백전노장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의 지휘 하에 부시팀은 법정싸움 내내 주도권을 행사, 혼돈의 와중에서도 절제된 효율성을 보였다. 위기에서 효율성을 발휘하는 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중요 자질이라면 부시팀은 그 부문에서 벌써 크레딧을 쌓은 셈이다. 부시 왕조의 파워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플로리다에는 제브 부시가 포진해 있었다. 이같이 절대 불리의 판세를 혼전으로 이끈 인물이 천재 변호사 보이스. 그러나 그의 천재성도 부시 왕조의 두터운 벽앞에서 통하지 않았다. 부시의 인맥은 연방대법원까지 뻗쳐 있었던 것이다.

2000년 대선 승리는 이런 면에서 부시 왕조의 승리로 볼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수많은 부시측 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돼 승리를 따냈기 때문이다. 그 승리는 또 다른 한면 아버지 부시의 승리인지도 모른다. 스캔들로 찌든 8년이 지난후 미국인들은 ‘위대한 미국인’이자 ‘고결한 지도자’로서 조지 부시를 새삼 기억, 뒤늦게 기립 박수를 보냈고 그 갈채가 부시 왕조의 복위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가능해서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아들 조지 W를 선정했다. ‘2000년의 진정한 인물’은 아버지 부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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