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레임덕 현상
2000-12-28 (목)
▶ 미국의 시각
▶ (마이클 팍스,그레고리 트레버튼: LA타임스 기고)
한국에서는 지금 ‘위기’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5% 성장률과 5% 실업률은 다른나라들 입장에서 본다면 부러울 정도의 수치다. 그런데도 한국사람들은 제2의 IMF를 운운하고 있다. 보다 놀라운 일은 김대중대통령의 임기가 아직도 2년이상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레임덕’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벨 평화상수상에 대해서까지 논란이 많고 지지자들조차도 김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김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재임기간 전체의 업적을 따져서 후에 내려지겠지만 국민들로부터의 평가는 그때그때 순간적으로 내려진다는데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김대통령은 자신이 지금까지 이룩한 업적에 대해 아무런 크레딧을 받지 못한채 도마에 올라있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햇빛정책’과 그결과 이루어진 지난6월의 평양 남북한정상회담등도 이제는 낡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 한국에서 뉴스는 경제가 회복은 됐지만 구조조정에는 실패했고 북한의 개방은 답보상태며 김정일의 서울답방이 언제 이루어질지 미지수고 정치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탄탄하며 무역수지나 외환보유고도 건전한 상태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시장자율에 맡기는 경제개편작업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개혁’은 과거 정부와 몇몇 재벌이 사이좋게 손잡고 ‘개발형 독재’를 실시하던 시절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일관성있는 개혁을 실시하기 어려운 입장이고 경제개편의 단계마다 이해가 얽혀 개혁에 반대하는 집단들과 부딪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에 맡긴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도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은행개혁에만 이미 1천억달러 이상의 돈이 들어갔다. 대우자동차를 GM이나 다른 외국기업에 넘기면 잘된 일이다. 그러나 현대건설에 대한 보조를 계속한다면 말짱 공염불이 될 것이다. 현대는 금강산관광사업에서 연간 1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다. 정부의 경제개혁의지에 대한 신뢰도는 낮다.
대북한문제에 있어서 관건은 김정일의 서울방문이다. 김정일은 서울방문을 약속하기는 했지만 그시기를 밝힌 적이 없다. 또한 북한은 남북한 사이에 주요이슈중 하나인 한반도 안보문제의 토의를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북한문제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고있는데 반해 그의 전임자들은 대부분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김대통령은 햇빛정책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노벨상 수상의 두가지 배경, 인권문제와 남북화해의 상충에 대한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번 평양방문시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은 정치적으로 깊이 분열돼 있다. 노벨상 수상후 김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은 심화되고 외국에서는 존경을 받으면서 국내에서는 비난을 받는 아이러니에 처해있다. 그는 취임후 과거 소외돼있던 자신의 출신지역 호남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결과 영남사람들로부터의 반발이 커져 지역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지난4월 총선에서 부산사람들의 90%가 야당에 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준다.
김대통령은 수감과 망명생활에는 익숙하지만 통치에는 경험이 없었다. 취임후 통치경험이 없는 추종세력과 전임정권의 관료들을 섞어서 정부를 구성했지만 양세력간에 마찰을 빚고있다.
김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신봉하지만 민주적인 인물이 아니며 독재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한국은 법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가 아니라 통치자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대통령은 선출된 독재자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주어지고 의회는 시녀노릇이나 한다. 그같은 정치체계 때문에 대통령에게 신뢰가 주어질 수 없다. 정부의 대폭개편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말뿐이다. 김대통령의 현재 모습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 고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모습이다. 김대통령은 최소한 한국을 등불 아래로 끌어나온 공은 있지만 역대 한국대통령중 명예롭게 은퇴생활을 즐긴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