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직장 분노와 초컬릿

2000-12-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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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초컬릿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아즈테크 문명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다. 1519년 멕시코의 지배자 몽테주마왕은 자신의 궁전을 찾은 코르테스에게 코코아 열매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초코아틀’이란 음료수를 대접했다. 코르테스는 몽테주마를 살해하는 것으로 보답했지만 대신 초컬릿을 스페인에 소개하는데는 앞장섰다.

흥미로운 것은 직장에서 분노를 느낀 직원들이 가장 사랑하는 식품의 하나가 초컬릿이라는 점이다.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교수가 실시한 직장내 분노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의 25%(여성은 무려 40%)가 초컬릿을 먹으며 분노를 삭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컬릿이 바로 직장내 분위기를 재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최근 경기 둔화와 함께 미국 직장내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의 42%가 자기 사무실에서 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것을 경험했으며 29%가 자신도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10명중 한 명은 직장내에서 치고 받는 폭력사태가 발생했으며 14%는 화가 난 직원이 회사 기물을 파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직장 내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는 개개인 일 부담이 늘어나서 그렇다는 설이 유력하다. 근로자의 50%가 격무로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렌트비가 계속 올라 회사에서 직원 개인 공간을 줄이는 바람에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미 근로자의 8명중 1명이 큐비클(칸막이를 한 작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데 옆자리가 너무 가까워 전화 받는 소리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 직원 불만중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날로 치솟는 집 값 때문에 매일 원거리에서 출퇴근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 요인의 하나다. 장시간 차를 몰아 이미 짜증이 쌓인 상태에서 출근하기 때문에 조그만 일에도 분노를 터뜨리기 쉽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하루 뒤인 26일 매사추세츠 웨이크필드의 한 인터넷 회사직원이 동료 7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단조롭고 장래가 없는 직장이란 이유로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일어났던 우체국이 아니라 하이텍 업체에서 일어났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직 범행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IRS 명령에 따라 체불 세금을 압류한데다 공개했던 주식을 다시 회수, 개인기업화를 추진하면서 직원들이 백만장자가 될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비단 이 회사뿐만 아니라 최근 닷컴이 무너지고 경기가 식으면서 환멸과 분노를 느끼는 근로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직장 폭력 예방 차원에서라도 고용주는 직원들이 초컬릿을 얼마나 먹는지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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