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마우스가 여자야? 남자야?” 세 살짜리 유치원생이 던진 질문이다.
“그럼 미키마우스의 여자 친구 이름은 뭐야?” 이것이 둘째번 질문이었다. 그때만 하여도 이름으로 성별을 판별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니마우스’란 대답조차 동료 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60년대에도 분명히 알고 있던 것은 그들을 창작한 사람이 월트 디즈니라는 사실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1901년 12월 5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가 만화가이고, 만화영화 제작자이고, 대규모 유원지 디즈니랜드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은 세계의 주지 사항이다. 그가 별세한 후에도 세계 어린이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는 증거는 도쿄 디즈니랜드가 생기더니 파리의 근교 마른리발리에 유로 디즈니랜드가 문을 연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사는 것은 일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업은 삶 그 자체이다. 또한 직업들은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활을 돕고 있다. 이 직업이 개인의 꿈을 이루는 방향과 얼마나 많이 합쳐지느냐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기쁨에 차이가 생긴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이 꿈은 질과 크기와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꿈의 질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일 것이고, 크기는 영향력의 범위일 것이고, 색채는 그 종류의 일 것으로 생각한다. 월트 디즈니의 꿈은 어린이의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일의 대상이 어린이였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만화시리즈를 책과 영화로 만들었고, 그들의 놀이터 디즈니랜드를 만들게 되었다.
이렇듯 꿈을 이루는 방법은 손쉬운 일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그 스케일이 확대되어 간다. 천리길은 목표이고 그 수행방법은 한걸음 한걸음으로 옮겨지는 계속적인 노력이다. 그런데 목표를 향해서 걷다보면 피곤함을 느껴 어느덧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는 항상 나침반을 간직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꿈을 이룬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생의 끝까지 꿈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진행형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꿈을 완성품으로 보기 보다는 끝까지 미완성품일 때 더욱 꿈의 본질에 접근한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그의 일생에 멈춰지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 꿈의 질이 개성적이면서 보편적일 때 반 영구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불후의 명작들이 수 세기를 이어가며 만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아직도 어린이들이 미키마우스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실들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그가 지금도 계속해서 어린이들의 친구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 일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행복도 우리 자신이 창출하는 것이다. 행복은 선물로 받는 물품이 아니고, 내가 빚어내야 하는 창조품인 것이다. 이런 뜻에서 월트 디즈니는 위대하고 지금도 살아있는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