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훌륭한 상사의 조건

2000-12-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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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세이

▶ 한우성 (경제부 부장대우)

얼마전 일본의 경영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가 20∼30대 사원 800여명 대상으로 ‘바람직한 상사의 모습’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는데 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닛케이비즈니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꼽은 훌륭한 상사의 첫째 덕목이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었다.

다음 조건은 ‘위에 대해서도 당당히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 ‘부하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 ‘실패를 책임질줄 아는 사람’, ‘인사가 공정한 사람’, ‘편애하지 않는 사람’, ‘주위를 밝게 만드는 사람’ 순이었다.
역으로 해석하면 지시가 애매모호하거나, 윗 사람에게 할말을 제대로 못하거나,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않는다거나, 인사가 불공정한 상사는 싫다는 얘기다.


어떤 상사가 가장 싫으냐는 직접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공은 자기가 챙기고 책임은 부하에게 미루는 사람’이라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상사에 따라 출세가 달라지는가’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78%가 ‘그렇다’고 답했고, ‘상사 때문에 사표쓸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50%가 ‘그렇다’고 답했다. 직장인의 삶에 상사가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지 보여주는 것인데 직장인에게는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행운인 셈이다.

리더십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주위 사람을 늘 신경을 써주는 ‘배려형’, 먼저 모범을 보이는 ‘솔선수범형’, 사내에 발언권이 있고 인망이 높은 ‘카리스마형’은 좋은 유형이었다. 주위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멋대로 하는 ‘대발이형’,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크렘린형’, 입만 살아있는 ‘외화내빈형’, 막후교섭을 즐기는 ‘밀실형’, 고민만하고 결단은 늦은 ‘뒷북형’, 입만 열면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다그치는 ‘수탈형’, 위만 쳐다보고 아래에는 눈길을 안주는 ‘가자미형’은 반대편에 있었다.

좋은 상사가 중요한 문제인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좋은 상사라 하면 스스로 목표와 행동이 투명한 사람, 어떤 문제라도 부하에게 쉽게 설명하는 사람, 팀내에서 첨단 플레이어인 사람, 부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리더의 소양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 상사보다 부하를 소중히 여기고 애정을 가진 사람을 떠올린다 한다.

비슷한 범주에 드는 얘기로 미군에는 리더쉽과 관련된 슬로건이 있다. ‘공은 부하에게, 명예는 상관에게’라는 것. 상관에게는 명예를 얻음으로써 만족하고 공은 부하에게 양보하라는 얘기고 부하에게는 공이 인정되면 만족하고 명예는 상관에게 돌리라는 경고인데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상관이나 부하가 많다는 시사이기도 하다. 하기야 불가의 가르침을 빌면 인간이 오욕의 복합체라 하니 새삼 놀랄 것은 없겠다.

이같은 얘기들은 직접적으로는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 국한된 것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비단 직장에만 국한되는 얘기도 아니다. 일반적 인간관계에서도 굳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같은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쩌면 최고의 행운일 지 모른다. 바꿔 말하면 좋은 만남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타인에게 최고의 행운을 주는 일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네 모두는 상사를 모시기도 하고 스스로 상사가 되기도 한다. 이제 며칠 있으면 금년도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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