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속감과 정체성의 공간

2000-12-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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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 리<메릴린치 재정자문가>

요즘 인기 있는 인터넷 사이트 중에 초중고대학 동창을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아이러브스쿨’이라는 것이 있다. 지나해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불과 1년만에 가입 회원수가 한국내 인터넷 사용 인구의 절반이라는 6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로 하여금 열광케 하는 것일까. 과거에 대한 향수인가 네트워킹이 주는 실용성인가.

연말을 맞아 이곳 한인사회에서도 각종 동문회 모임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항상 소속되기를 원하는 만큼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며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모임을 찾는다. 한인들에게 미국은 분명 낯선 공간이다. 그러한 물리적 공간에서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사회적 공간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며 동문회의 활성화는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동문회 참여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어떤 집단에 대한 근본적 신뢰와 소속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는 것이고, 둘째, 네트워킹이라는 실용적인 수단을 통한 상호부조로 개인적인 이익도 도모한다는 것이다. ‘선배님’이라는 존경이 듬뿍 담긴 한마디는 듣는 이로 하여금 심정적으로 무장해제를 시켜버림과 동시에 끈끈한 감정적 유대감을 나누는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정체성의 공간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감정을 나누며 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동문회, 정당, 종친회, 전문가협회, 한인회 등을 살아남기 위해서 협동하면서 살았던 고대 부족집단의 연장선에서 놓고 해석한다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동문회는 이러한 소속감을 느끼며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정체성의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학연을 통해 형성되는 네트웍은 가족이라는 폐쇄적이고 제한된 네트웍과는 비교할 수 없게 폭이 넓으며 정치나 행정, 혹은 사업의 장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급한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은 한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네트워킹이란 주류 사회에서 더 보편적으로 쓰이는 개념이며 특정한 사람들과 오랜 기간에 걸친 친분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중요한 무형의 자산으로 간주된다.

동문회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공간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서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의 속성을 말한다면 ‘격화되어 있는 생존경쟁’이다. 늘 긴장되어 있다. 잠깐이라도 휴식을 원한다면 동문회에 나가 보길 권한다. 함께 교가를 부르고 오래된 가요를 들으면서 삶의 페이소스를 진하게 느껴보시라.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는 국민교육헌장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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