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로운 이에게는 더 외로운 12월

2000-12-22 (금)
크게 작게

▶ 홍영남<킬린>

12월은 아무런 불평 없이 11달을 기다렸다가 갑자기 나타나 휙, 휙, 놓쳐버린 순간, 시간, 세월들을 후회하게 만든다. 일년 내내 떠돌아다니던 순간, 시간, 세월들, 느닷없이 몰려와 앞서간 11달이 미처 못한 일들을 어서 하라고. 그래서인지 지난해에도 그랬고 그 이전 해에도 그랬듯이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무엇에 쫓기는 것 같다. 마치 시간의 빚쟁이가 문턱에 앉아서 낭비한 시간을 내놓으라고 독촉하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느낌마저 들게 된다. 개인적인 일, 단체의 책임 맡은 일, 사업상 마무리지어야 할 일 등을 정리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 진다.

12월은 풍요함을 느끼게 하는 달이다. 샤핑몰에 갈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미국 사람들은 일년 내내 개미처럼 일해서 번 돈을 12월 한 달에 다 써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크리스마스 샤핑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 또는 선물은 살 여유는 있어도 선물을 받아줄 상대가 없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선물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액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그것을 받는 상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상대 모두에게 행운이다.
12월은 어느 때보다 화려한 달이다. 평범한 주택가에도 밤이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호화찬란한 등불 행렬이 요술의 나라 속을 지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렇게 화려한 외형이 마음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요술나라에서의 이야기일 것이다.


12월이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풍요한 만큼 외로운 사람에게는 더욱더 외로운 달이다. 때문에 병원 또는 응급 의료관계 일을 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맘때부터 봄철까지를 ‘자살 시즌’이라고 한다. 양지가 있기 때문에 음지가 있듯이, 화려한 12월은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해외근무로 떨어져 있는 가족, 부모가 각각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결손가정, 직장에서 휴가를 얻지 못해 객지에서 혼자 지내는 독신자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가장이 실직한 가정,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12월이 자신들의 현실을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게 하는 달이다.

지난해도 그랬듯이, 그리고 그 이전에 보낸 수많은 해에도 그랬듯이 다음 해 이맘때는 화려함과 풍요로움보다는 마음속으로 알찬 계절이 되기를 다짐하고, 앞으로 지급 받을 한해의 준비를 하면서 12월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란다. 새해가 오면 지키지 못할 약속을 또 다시 시작하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