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합니다

2000-12-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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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덕<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맥도널드에서 해피 밀을 샀더니 햄버거와 함께 장난감이 나왔기에 옆 좌석에 앉아 있던 꼬마에게 주었다. "무어라고 말해야 하지?" 장난감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아이에게 젊은 엄마가 묻는다.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장난감에서 눈을 떼고, 입술을 동그랗게 옹그리며 "댕큐" 한다.

미국인 부모들이 자녀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열심히 가르치는 말이 "댕큐"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길에서 지나가다가 볼이 토실토실하고 귀여운 아이에게 예쁘다는 말을 한마디 던져도 "댕큐"하라고 가르친다. 작은 선물을 받아도 댕큐 카드를 보내라고 가르친다. 앤 랜더스 어드바이스 칼럼에도 빠지지 않고 실리는 글이 감사에 관한 글이다. 한국말을 배우는 미국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도 "감사합니다"이다.

행복한 삶의 첫째 조건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에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일까. 아니면, 크리스천 종교의 영향을 받아 "범사에 감사하라"하는 가르침이 일상생활의 정서가 된 것일까. 하여튼, 미국 사람들이 이처럼 신경을 쓰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도록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유대인 랍비는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이렇게 가르쳤다. 매일 감사 할 일 100가지를 찾아서 큰소리로 감사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 누구나 행복하여 질 것이라고.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누구에게나 감사할 조건이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의식주를 남의 손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쌀 한톨 생산하지 못하면서도 농부들이 땀흘려 수고하여 일한 대가로 배부르게 잘 먹고, 바늘구멍에 실도 꿸 줄 모르면서 철따라 새 옷을 입고, 못 하나 박을 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수고로 지어진 집에서 있다. 감사할 조건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감사하는 것을 잊고 살고 있다.

나 역시 평소에 감사하다는 말을 아껴 쓴다.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댕큐"는 기본 에티켓이다. 한국사람도 미국에 오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댕큐가 아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영어가 짧은 사람도 미국 사람들에게는 감사한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끼리는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쓰지 않게 된다. 절친한 친구나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주 하지 않는다. 낯선 미국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식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데는 서툴다. 아마 습관이 되어있지 않아 쑥스러워서 일지 모른다.

언젠가 한인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하였을 때이다. 남편의 "댕큐" 소리가 너무 듣기 좋다하면서 한국 남자들은 입이 고장이 났는지 고맙다는 소리가 없다고 다시 태어나면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농담을 하여 웃은 적이 있다.

한인 2세 여학생들이 매너 없는 한국 남자보다는 타민족 남자들과 데이트하기를 원한다는 설문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감사하다는 말에 인색한 한국계 남학생들이 매너가 없게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본의와 달리 남학생들이 감사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여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것은 아닐까.

말끝마다 "댕큐" 하는 것이 우리 정서가 아니기에 어색하지만, 이 곳에서 살아갈 자녀들을 위하여 부모인 우리가 본을 보여야 하겠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항상 감사를 표현하면서 산다는 것은 자녀에게 행복한 삶을 사는 비밀을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교육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미국인 친할머니 뺨에 키스를 하면 할머니는 고마워하면서 댕큐를 연발하였다. 외할머니는 아이들이 키스를 하면 "아이고 예쁜 내 강아지"라고 표현하시지만 감사하다고 말하시지 않았다. 친할머니는 손자의 키스를 선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댕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손자가 할머니를 따르고 재롱을 피우는 것은 당연하기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은 이러한 상황에서 적합하지가 않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미국 사람에게는 열심히 "댕큐" 하면서 가까운 가족끼리 "내 마음을 뻔히 알텐데 뭘" 하며 굳이 감사하다는 말 한번 없이 살고 있지나 않는지 반추해 보자. 나 역시 가까운 식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식구들에게서 들었을 때 기분이 좋다. 며칠 전 아들이 버스를 놓쳐 그의 직장까지 운전을 하여 주었더니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인데,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뻤다.

듣기도 기쁘고, 말하기도 흐뭇한 말, "감사합니다"를 하루에 백 번씩 하면서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밀레니엄 첫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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