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리 크리스마스

2000-1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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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박흥진 (편집위원)

성탄일의 일기예보를 보니 최고기온이 70도까지 올라갈 모양이다. 또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을 것 같다.

인공 눈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겨울 맛을 즐기고 싶은 앤젤리노들의 하얀 크리스마스에 대한 동경은 빙 크로스비가 노래 부른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여실히 나타나 있다.

‘태양은 빛나고, 풀은 푸르고, 오렌지와 야자수는 흔들거리지요/베벌리힐스 LA에는 한번도 그런 날은 없었지만/12월 24일이 되니 나는 북쪽에 가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나는 하얀 크리스마스를 꿈꿉니다. 늘 내가 알던 그런 크리스마스를/나무들의 끝은 물기로 반짝이고 아이들은 눈 속에서 썰매의 종들이 울리는 소리를 듣던/나는 하얀 크리스마스를 꿈꿉니다. 모든 크리스마스 카드에 내가 이렇게 쓰던/“당신의 날들이 즐겁고 밝기를, 그리고 당신의 모든 크리스마스들이 하얗기를 바랍니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비롯해 수많은 팝송을 작곡한 어빙 벌린이 지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영화 ‘할러데이 인’(Holiday Inn·42)에 나오는 수많은 노래중 대표곡으로 크리스마스 캐롤의 간판곡이다. 이 영화는 빙 크로스비와 프레드 애스테어가 주연한 노래와 춤이 있는 뮤지컬인데 노래는 크로스비가 불렀다.
영화가 컬러였더라면 더욱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어울렸을 작품으로 호텔 할러데이 인이라는 이름은 이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입만 뻥끗했던 가수를 비롯해 거의 모든 가수들이 무슨 통과의식처럼 부르고 있지만 성탄절의 아늑한 분위기를 가장 달콤하게 노래해준 가수는 솜사탕 같은 음성을 지녔던 빙 크로스비와 페리 코모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합창으로 부르는 ‘작은 북 치는 소년’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블루 크리스마스’가 내가 좋아하는 캐롤이지만 요즘 연말까지 매일같이 24시간 캐롤만 방송하는 KLAC(AM 570)를 틀면 크로스비와 코모의 노래를 자주 만날 수 있다. 클래시칼 팬들에게는 바하의 칸타타와 헨델의 ‘메시아’가 팝송팬들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같은 곡들.

크리스마스 캐롤의 대표곡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면 크리스마스 도장이 찍힌 영화는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눈물겨운 드라마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46)이다. 이 흑백영화는 메노티의 오페라 ‘아말과 밤에 찾아 온 손님들’과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크리스마스 시즌의 단골작품이다.

‘멋진 인생’은 베드포드 폴스라는 한 작은 마을에 사는 꿈 많은 소시민 조지 베일리(제임스 스튜어트)가 사업에 실패, 강에 투신하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이를 막는 것으로 시작된다. 중년의 술주정뱅이 같은 조지의 수호천사 클래런스는 조지와 함께 악몽여행을 떠난다. 만약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베드포드 폴스가 어떤 꼴이 되었겠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조지는 이 환상여행에서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를 깨닫고 “나는 다시 살고 싶다”고 소리지르며 현세로 돌아온다. 그리고 조지는 이 세상이 얼마나 멋있는 세상인가에 대해 감사하며 환희작약 한다. 사랑하는 아내 메리(도나 리드)와 4남매를 꼭 끌어안은 조지 주변으로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올드 랭 사인’을 노래 부를 때쯤이면 콧등이 싸한 감동에 젖게 된다.

이 영화가 세월을 너머 모든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이 된 까닭은 모든 사람은 하나의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똑같이 중요하다는 보편 타당한 진리를 매우 솔직하고 신선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친구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아울러 깨닫게 해준다.

어떤 냉소적인 사람들은 조지가 남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작은 마을에 안주하는 것을 멍청한 짓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남을 생각하고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크리스마스 정신에 썩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어 이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색찬란한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즐거운 잡담을 깜빡이고 백화점엘 가나 술집엘 들르나 신나는 사람들로 붐비어대니 더욱 고독해지는 계절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치스러운 고독일 수도 있다. 프리웨이 출구에 선 홈리스 피플의 고독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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