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분 좋은 성탄절

2000-1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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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순<계명대학교 부설 아카데미아 코레아나 소장>

성탄절은 기뻐야 제격이다.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은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도 받아 보고, 거리마다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에 흥겨워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온갖 화려한 불꽃 장식에 하얀 눈이라도 내려 주면, 그건 정말 기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성탄절의 멋이기도 하다.

성탄절을 며칠 남겨두고 올해도 우리 집안은 모두가 분주하다. 평소에 없던 모임도 늘어나 괜스레 들뜨기도 하고, 날이 갈수록 잊지 않고 챙겨야 할 어른들도 점점 늘어나 어떻게 인사를 할까 고민도 하게 된다. 샤핑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부담조차도 다 기쁜 일이다. 한데 올해 고등학교 졸업반인 우리 아들 녀석만은 별로 기분이 좋지 못하다.

며칠 전 학교의 봉사클럽에서 단체로 멕시코의 어느 고아원에 다녀온 후로 부쩍 고민이 많아졌고, 그 고민이 이 녀석을 기쁘지 않게 한 모양이다. "아빠, 난 미국에 산다는 게 행복해. 그런데 멕시코의 불쌍한 애들을 생각하면 나의 처지를 기뻐할 수가 없어. 기분이 좋지 않아" 기특한 생각에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줬지만 그 녀석을 불편하게 한 건 또 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요 며칠 사이에 소위 명문대학들로부터 조기입학 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 날 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오랫동안 축하 파티를 벌이고 늦게 서야 돌아왔다. 그리고는 풀이 죽어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난 아무래도 나쁜 놈인가 봐.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라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고 싶었는데, 맘 한편으로는 좀 질투가 생겨 기분이 좋지 않았어" 난 달리 위로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두 가지 처방을 내렸다. 자기에게 넘친다고 느껴지는 분수를 멕시코의 불쌍한 어린이들과 형평을 이루도록 분배하는 일이다. 당장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돕는 일도 필요하지만, 이 지구상의 빈곤퇴치를 위해 네가 장차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또한 ‘자기 성취’의 욕심에만 쏠려 있었던 에너지를 ‘우리들의 성취’로 방향을 바꾸고, 그것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관심을 모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참 기쁨은 남의 몫을 인정하고 보장해 줄 때 가능하다. ‘기를 뿜어내어 분배함’으로써 ‘기쁨’을 얻을 수 있고 ‘기분’도 좋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여럿이 기를 모아 ‘기합’을 주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공동체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친구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려면 나의 관심이 지구적 관심이 되어야 한다.

’기를 뿜는 일’ 즉 ‘기쁨’은 상대방과의 관계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이웃의 처지를 측은히 여기고 나의 일처럼 배려하는 마음이다. 굶주린 이를 위해, 갇힌 자를 위해, 고통받는 이를 위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다. 기를 뿜는 일은 결코 나보다 못한 이에 대한 값싼 동정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함께 하고자 하는 열정’(com-passion)이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로지 승리만을 향해 달음질쳤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기분 나빠하는 아들을 위한 특별한 성탄선물을 준비하고 싶다. 경쟁의 승리에서 얻어지는 기쁨 보다 남을 위한 배려에서 얻어지는 또 다른 기쁨은 맛이 다를 법하다. 잊혀진 이웃들과 잠시라도 함께 아픔을 나누고, 잠시라도 나의 욕심을 지구의 욕심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진정으로 기분 좋은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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