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판검사님들 왜 이러십니까

2000-1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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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수필가)

미국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끝나고도 한 달이 넘는 동안 기계검표와 수검표 공방때문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국민들도 이에 편승, 미국이 두 조각으로 갈라선 형상이었다. 그 와중에 주권자인 국민은 어느새 객석으로 밀려나 버리고 종막에 가서 연극 평론가들이 무대를 장악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투표는 국민이 참정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기계검표든 수검표든 여태껏 해온 관행대로 하면된다. 근소한 표차의 당락 결과가 낙선자에겐 한없이 아쉬울 게다. 그러나 구멍이 덜 뚫린 표를 기계가 합산해내지 못하니 별도로 세야 한다는 것은 애당초 논란거리로 삼지 말아야 했었다.

그보다 최종적으로 시비를 가려야할 각급 판사들이 들쭉날쭉한 판결문을 쓴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판사들은 불가변의 나침반이 어디서나 정확히 남북을 가리키듯 본질적으론 일맥상통하는 판결이 나와야 했었다.


플로리다주 대법원 판사들은 ‘다소 모호한 현행 주 선거법을 해석했을 뿐이고, 결코 권한을 넘어서 법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한 부분적 재검표를 지시했었다. 이에 반해, 연방 대법원 판사들은 ‘플로리다주의 선거는 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마련한 정당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한 연방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하고, 공화당 후보에게 유리한 재검표 중지를 명령했었다.
어째서 플로리다주 대법원 판사들과 연방 대법원 판사들의 판결이 그렇게 다를 수 있었을까? 문제의 본말은 주 대법원 판사들은 민주당 주지사가 임명한 사람들이 많고, 연방 대법원 판사들은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옛날 지혜의 왕 솔로몬은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했던 송사를 맡아 “아기를 반쪽씩 나눠 주라”고 판결했다. 그 판결은 명 판결이었다. 나눠갖기를 포기해버린 여인이 진짜 아기 엄마로 판명되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아전인수 격으로 술수에 능한 사람들은 사실을 인정치 않으려고 말머리를 빙빙 돌려 얽어놓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문제가 복잡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본맥을 짚고 보면 지름길이 훤히 뵈기 마련이지다.
한국은 어떤가. 거기선 검사들이 문제다. 그 조직 사회의 구호중엔 ‘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란 것이 있고, 검사의 덕목에는 ‘어떤 경우라도 매매되지 않는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러워 하지 않는 사람. 정직한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대체로 이런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특정지역 인맥의 줄이 위아래를 엮고 있어서 그럴까?

검찰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어야지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검찰 총수 부인이 관련됐던 옷로비 사건은 국민들이 다 알고 있은 사건이었고, 특별검사가 제대로 밝혀놓은 사건인데, 기소권의 칼자루를 엉뚱하게 휘둘러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꿔 송치 해놓고, 나중에 판결은 어떻게 나왔던가. 요즘 연일 터지는 정치성 사건들과 몇 백억대의 대형 금융 사고들로 인해 가뜩이나 주눅든 국민들이 통분을 참지 못하다가 허탈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다.

고래로 ‘순리가 진리고 진리는 상식적인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한국의 판검사들이 진리는 두터운 법전속에 있지 않고 가까운 등잔 밑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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