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웰페어 노인을 울려서야

2000-12-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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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윤 (수필가)

러시아 문학가 뚜르게네프의 단편에 ‘용감한 참새’라는 것이 있다. 1878년 4월 어느 날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개와 함께 걷고 있는데 백엽나무 위의 새집에서 참새 새끼 한마리가 힘없이 푸드득거리며 보도로 떨어졌다. 개가 그 참새 새끼 곁으로 가까이 가자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어미새가 날아오더니 개의 코끝에 세 번 부딪쳤다. 그러자 그토록 사나운 사냥개도 호흡이 부자연스러워져 물러섰다. 뚜르게네프는 어미새의 새끼를 생각하는 애정에 감동되어 한참동안 그 모양을 보고 있다가 개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는 이야기다.

비단 이런 이야기는 뚜르게네프의 단편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나 동물의 세계에 그 예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고 위하는 헌신적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이라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동물들도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기꺼이 목숨까지도 버리는 데, 하물며 인간이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야 동물들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의 예는 너무 많아 우리가 그 위대한 정신에 감동하지도, 고마움도 모르고 지내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회 곳곳에서는 부모님들의 무조건적 사랑에 배신하는 반 인륜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중 하나가 자식들이 연로하신 부모님이 영어가 미숙한 것을 악용해서 부모 몰래 웰페어를 신청해 가로채 쓰는 일이고, 또 하나는 신청을 대행해주는 브로커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2-3천 달러씩이나 받아 내는 일이다.


서양사람들과 달라 한국 부모들은 대체로 한평생 살아오는 동안 당신 자신들을 위해서 노후준비를 해놓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설령 어느 정도 노후준비를 해놓은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이 어려움에 처하면 길거리에 나앉는다고 해도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내주고 마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많은 한인노인들은 웰페어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고, 그나마 평생을 자식이나 남편을 위해 희생적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겨우 연명할 정도의 최저생계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돈을 모아 두었다가 그 돈으로 자식들을 돕는 것도 흔히 보아온 일이다. 한국의 관광지에 가면 젊은이들로 가득 찼고 미국의 관광지에 가면 노인들로 가득 찼다는 말이 한마디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노부모님의 생명줄과도 같은 웰페어를 본인 몰래 가로채 가는 자식들이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또한 웰페어 신청을 대행해주고는 터무니없는 고액을 챙기는 웰페어 신청 브로커들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생각해주기 바란다. 어떤 이는 혼자 지내는 할머니가 웰페어 타는 방법을 몰라 오래 지난 것을 알고는 웰페어를 타게 해 주겠다고 설득한 후 소급해서 탄 몇년치 2만여 달러를 몽땅 수수료로 받아갔다고 분개했다. 한인타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더 나아가 부끄러운 일 정도가 아니라 범죄행위다. 웰페어란 그리 넉넉한 돈이 아니다. 미국정부가 생활력이 없어진 노인들을 위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계산해낸 돈이다.

이제 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보면서, 불우한 이웃을 돕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불편을 참고 어렵게 살아가는 노인들의 웰페어를 가로채고 고액의 수수를 물리는 부덕한 일은 없어야겠다.

요즈음 신문지상에는 한인 노인회관 문제가 파문을 일으켰고, 많은 한인 노인들이 잘못 관리된 상조회 기금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노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지금 한인타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노인 문제들에 대하여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다. 그리고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들은 바로 너와 나의 부모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교회에 가거든 노인 곁에 앉아서 성경이나 찬송가를 때 맞춰 찾도록 도와드리고, 계단을 내려설 때는 팔이라도 부축해 드리자. 제발 웰페어 타는 노인들을 울리는 일은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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