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부자와 한국의 부자

2000-12-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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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향민<영어음성학자>

한국의 서민들은 부자들에 대해 부러움과 동시에 미움의 두 가지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서민들은 부자에 대해 부러움을 갖고 있어도 미워하는 감정은 갖고 있지 않다. 아니 많은 경우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오래전 ‘부와 명성’(The rich and famous)이라는 미국 TV 프로그램은 부자들이 어떠한 곳에서 살며 어떻게 사는가를 시리즈로 방영한 적이 있었다. 만일 한국에서 이러한 프로가 제작되려고 하면 부자 자신들도 원하지 않고 또 사회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하여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면 왜 미국의 부자들은 미움의 대상이 아니고 한국의 부자들은 미움의 대상이 될까? 이유는 부의 축적과정과 부의 사용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일단 정당한 과정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한국의 부자들은 많은 부분 정당한 부의 축적인지 의심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부자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반 서민들은 부자들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부를 얻었다고 믿기보다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었으며, 어떤 경우 서민들의 기회를 앗아간 부도덕한 인간으로 낙인찍는다.


부의 사용에 있어서도 한국의 부자들은 미국의 부자들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정당한 부를 소유했음에도 미국의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다. 철강 왕으로 한때 부자의 대명사로 불리던 카네기는 “부자로 죽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카네기는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여 후세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도 잘 아는 카네기 홀도 카네기가 사회에 환원한 많은 것들 중 하나이다. 또 다른 부자 록펠리 가문도 부를 사회에 환원하여 서민들의 생활에 직접적 도움을 주고 있다. 뉴욕시의 유엔 건물도 록펠러가 기증한 것이다. 리바이스 청바지의 창시자 리바이스도 사회 환원에 적극적이었으며 폴 게티 같은 부자는 박물관으로 국민들의 정서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부자 빌 게이츠는 100억달러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 중 1,000분의 1씩만 자식들에게 상속한다고 선언했다.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부자들이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는 경우는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미국에는 이러한 부자들의 재산 환원이 지역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

한국의 부자들은 어떠한가. 어느 재벌 회장의 손자는 두세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수백억의 재산이 있다는 신문기사는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어느 부자가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간혹 부정축재가 노출되면 문화재단인가 하는 정체 모를 단체를 만들어 재산을 임시 피신시킨 후 조용해지면 되돌린다. 자신들의 부정한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던 전직 대통령들도 국민들이 잊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간혹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할 때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부자가 아니라 풍족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검소하게 살면서 재산을 모은 보통사람들이었다.


한국의 부자들은 부자로 살다가 부자로 죽기를 원한다. 아니 부자로 죽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재산을 자신의 가족들만이 영원토록 간직하고 호의 호식하기를 바란다. 죽어서도 부자로 남기 위하여 법을 어겨가며 무덤을 호화스럽게 장식한다.

부자들을 포함한 한국의 많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조상의 묘를 보면서 국립묘지를 물리치고 고향의 조그마한 공동묘지 먼저간 딸 옆에 묻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왜 훌륭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다시 한번 카네기의 말을 음미해 본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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