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맥마틴 프리스쿨 사건의 후유증

2000-12-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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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어느날, LA인근 중산층동네 맨해턴비치의 한 아이엄마가 "두 살된 아들이 프리스쿨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전화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고 소셜워커들이 동원돼 이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다닌적 있는 384명의 어린이를 개별 인터뷰했다. 그중 349명이 ‘비밀’을 털어 놓았다. 학교내에 섹스게임을 위한 ‘비밀동굴’이 있다고 밝혔다. 예배당 교탁에서 토끼를 죽였고 외부사람들이 성추행을 한적도 있다고 말했다. 매스컴이 연일 대서특필했고 미전국의 이목이 LA로 집중됐다.

검찰은 이학교 교장 페기 맥마틴 벅키와 아들 레이 벅키등 7명을 41명의 어린이에게 208건의 추행을 한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LA카운티 검찰사상 최고라는 1300만달러의 기소비용이 투입됐던 ‘맥마틴 프리스쿨 재판’은 7년을 끌면서 단 1건의 유죄평결도 이끌어내지 못한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비밀동굴은 없었고 교탁에서는 토끼의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어린이들이 영화배우 척 노리스와 제임스 한 LA시 재무관(현 LA시검사장)의 사진을 성추행 용의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소셜워커의 유도성 질문에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발휘,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레이 벅키는 첫재판과 재심에서 모두 배심원 의견 불일치(hung jury)로 풀려났고 페기 맥마틴 벅키는 무죄평결을 받았다. 나머지 5명의 용의자는 예심단계에서 풀려났다.


전재산을 변호사비용으로 날리고 30년동안 쌓았던 교육자로서의 커리어를 불명예스럽게 끝내고만 페기 맥마틴 벅키는 자신에게 혐의를 씌운 한 학부모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배상금은 단돈 1달러에 불과했다. ‘모든 것을 잃은채’ 토랜스의 집에서 홀로 쓸쓸하게 살아오던 페기 맥마틴 벅키는 지난15일 집인근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향년 74세.

벅키모자가 과연 성추행을 했는지,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것인지 우리는 잘모른다. 그러나 맥마틴프리스쿨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벅키 모자도 거액의 혈세를 낭비한 검찰도 아니다. 피해자는 바로 어린이들이다.

이 사건이후 어린이 성추행 파문이 전국각지에서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진짜 추행이 입증이 된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혐의는 어린이들의 조작이나 소셜워커의 오버액션으로 야기된 소동으로 드러났다. 아이들의 거짓말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뒤늦게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풀려난 케이스도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프리스쿨에서는 어린이와 피부만 접촉해도 성추행혐의를 받을 수 있다하여 아이가 넘어져서 울어도 일으켜주지 않는 ‘노터치 폴리시’를 엄격히 실시하고 있다. 기저귀도 물론 갈아주지 않는다. 유아원 선생이 성추행혐의가 무서워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줄수도 없도록 사회가 삭막해진 것이다. ‘맥마틴 프리스쿨사건’의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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