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과시’ 사라지고 성숙해진 모습들

2000-12-20 (수)
크게 작게

▶ 김인자 <시인>

며칠 전 동창회의 송년파티에 참석했다. 59년 졸업한 S대 부속고등학교 동창회였다. 남녀공학을 다녀서였는지 학교에 대한 애틋한 추억도 없고 졸업한 후에도 공부에, 생활에 쫓기느라 그 성장기 시절을 회상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 날 아침에 일어나니, 내 차가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과대 포장된 친구의 잘 사는 얘기를 듣고 와서 며칠동안 데모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는지 어젯밤 남편이 미리 내게 예방주사를 놓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라는… 내게는 별로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염려는 기우였다.

한국전쟁 후 삭막한 분위기에서 학교에서 공부 끝나면 집에 와서 소설책 읽는 일이 전부였던 그 시절 나는 콩나물 시루 속의 한 콩뿌리 같이 학교 안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알지만 반이 다른 남학생들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호텔 이층에 있는 동창회장에 들어가니 둥근 테이블마다 친구들이 둘러앉아 웃고 얘기하며 장내가 화기애애한 열기로 가득하다. 2회부터 40회 동기까지 테이블마다 모여있다. 나도 11회 테이블에 앉았다. 세상 이야기, 집안 이야기, 동창들 소식 등 위트와 조크가 출렁이는 분위기는 사회자의 재치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 곳에 와 있는 11회 동기 9명중에서 5명이 오고 서울에서 방문한 친구까지 6명에 남편들 2명이 합친 8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며 동창이라는 동아리에 속한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귀속감 문제로 방황했었다.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미국이나 한국에 속하지 않고 현재 내가 있는 이 곳 이 상황의 나 자신에 귀속된다는 정체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느낌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 이제는 내가 절대적으로 미국 사람이 아닌 것 또는 한국 사람이 아닌 것에 개의하지 않게 되었다. 동창회에 참석해서 모두들 그런 희로애락의 인생 여로를 거쳐 이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래 전, 대학 동창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모임이 미국인들의 공식적인 사교 파티와 같이 부부동반에 정장 차림이 많았다. 분위기는 생각보다 딱딱하고 모금파티 같이 느껴져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동창회가 친목의 모임이 아닌 도식적이고 과시의 장소가 된 듯하여 다시 올 필요가 있을까도 생각했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생각도 성숙해져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동창들의 따뜻한 모임이라면 왜 참석하지 않겠는가.
사회에서 인간들과의 부대끼는 삶 속에서 한 가닥 순수(어린 시절)의 자락을 잡고 다시 옛일을 생각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한 동아리로 묶이어 한 테이블에서 먹고 마시며 연대감을 갖는 것도 늙어 가는 길에서 한가지 즐거운 일이리라. 동창회가 우정을 새롭게 하는 따뜻하고 부담 없는 마음의 모임이라면 복잡다단한 일상생활의 활력소가 되지 않겠는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