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크루지와 산타클로스

2000-12-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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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스트

▶ 민경훈 (편집위원)

해마다 이맘때면 빠짐 없이 TV 화면을 장식하는 작품이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그것이다. 디킨스가 31살 때 쓴 이 작품은 발표된지 157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의 생명력이 강한 이유는 불우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해 리얼리티가 있는 탓도 있지만 단순한 아동문학 수준을 넘어 여러 각도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첫째, ‘크리스마스 캐롤’은 울프와 조이스, 프루스트등으로 대표되는 ‘의식의 흐름’ 문학의 선두주자라는 분석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크루지를 찾아오는 유령들은 외계에 존재하는 귀신들이 아니라 심층심리학적으로 스크루지 무의식의 심연속에서 떠오른 잠재적 불안과 회한의 상징이란 것이다.

둘째는 원죄의 짐을 지고 태어난 인간이 그리스도를 영접해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삶과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적 가르침의 작품화란 해석이다. 유령들이 찾아오는 시점이 예수 탄생을 하루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점이 그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세 번째는 이 이야기가 냉혹한 돈의 원리를 추종하는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고 자기반성하는 과정을 작품화한 것이란 주장이다. 개과천선한 스크루지의 모습은 바로 사회적 안전장치를 도입한 개량 자본주의의 모습이란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은 농업혁명이다. 10,000년전 터키 남부에서 시작된 농업과 목축이 없었으면 인류가 지금처럼 문명사회를 이뤄 사는 것이 불가능했으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 다음으로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 산업혁명이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탄생한 산업혁명은 사상 유례없는 부를 창출하며 인류의 생활수준을 현격히 상승시켰다. 예수 탄생 이후 별 변화가 없던 전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하고 30세 안팎이던 인간의 평균 수명이 60세가 넘게 된 것도 산업혁명의 덕이다. 자본주의 비판자인 마르크스조차 ‘지난 100년간 시민계급은 선대의 업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생산력을 창출해냈다’며 ‘이런 엄청난 생산력이 잠자고 있으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라고 반문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그를 가능케 한 자본주의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지식인의 혹독한 비판을 받아 왔다.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관계를 현찰 지급관계로 전화시켜 인간을 상품화하며, ▲형식적 평등이란 미명 아래 모두를 자유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장으로 내모는 약자에 불리한 제도고, ▲자본가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임금만 지불하고 경쟁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전세계의 주도적인 경제체제로 자리잡았지만 이와 함께 그에 반대하는 집단들의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작년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반대 시위, 체코에서 있었던 ‘국제통화기금’ 반대 데모, 그리고 올 미 대선에서 자유무역 반대를 앞장서 외친 ‘녹색당’의 입김이 거세진 점등이 모두 그 사례다.

그러나 많은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단점만을 강조할 뿐 그 강점을 잊고 있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정보통신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를 동물과 구분 짓는 도구의 발명 자체가 따지고 보면 기술혁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 발전의 근본 동력인 기술혁신을 축복한다.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스크루지와 같은 근검절약가들이 쌓아 놓은 자본이 축적돼 있었고 이 자본을 투자해 얻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은 사회 안정을 저해한다. 새 테크놀로지가 도입되면 종전 방식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실직하게 된다. 19세기초 영국에서 방적기계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게된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기계를 때려 부수자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실업자가 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소비자가 싼값으로 대량공급된 상품의 혜택을 입었다. 기계가 짜낸 이 면제품은 더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평생을 보내야 했던 하층민들은 악취와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줬다.

동화속에서는 산타 클로스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어린 아이에게 줄 선물은 자본주의가 창출해낸 부에 기초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스크루지의 공과 과를 함께 돌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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