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에서 ‘한국말’ 필요하다

2000-12-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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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숙

SAT II 한국어 진흥재단에서 일한 지 1년이 된다. 돌아보면 낯선 미국생활과 더불어 새로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나온 2년은 참으로 숨가쁜 시간이었다.

미국에서의 우리말 교육. 생각하기에는 쉬운 것 같기도 하나 참으로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다. 지난 몇달 동안 미국 전역에서 SAT II 한국어 시험에 대해 많은 학생들과 부모로부터 문의전화와 메일을 받았다. 선배나 가까운 친척이 높은 SAT II 한국어 시험 점수 덕에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다며 그동안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디서 공부할 수 있는 지를 묻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반가움과 안타까움으로 상담을 하면서 이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우리말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 같아 마음 뿌듯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이민 1세대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 때문에 한인이면서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1.5세대, 2세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영어라면 그저 주눅 들었던 세대, 어쩌면 미국사회에 빨리 적응하기를 바랐던 안타까운 부모들의 마음이 그리고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우리 부모들의 잘못된 학구열이 우리 자녀들을 우리말 못하는 반벙어리로 만들었을 것이다.


지난달 지역별 대학 세미나에서 만난 한 학부형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분은 25년 전 이민 와서 아이들에게 집에서조차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했다. 미국에서 자라 미국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므로 하루 빨리 영어에 능숙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여 아이들을 열심히 교육시켰고, 다행히 아이들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대학에서 다른 한인 학생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비로소 본인이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 나가 한국어를 공부해야 했고 많은 시간을 뒤늦게 한국어 공부하는데 바쳐야만 하였다.

그 분은 이제 두 아이들이 모두 졸업을 했지만, 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아이들의 실패를 뼈아프게 인정하며 남아 있는 아이들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또한 대학에 갈 때까지 한국어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서야 스스로 한국인임을 깨닫고, 미국사회에 한인으로 정착하기엔 한국어가 필요하며, 한인으로서 한국어를 모르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장애인지를 피부로 느끼며, 후배들을 위해 한국어반 개설에 열심인 학생들도 많이 있다.

97년 첫 시험을 시작으로 해가 거듭될수록 SAT II 한국어 시험을 보는 학생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볼 때, 한국어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한국어가 당당히 세계어의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는 그 날을 바라보며 이 재단의 지킴이 노릇을 더욱 열심히 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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