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란 사태의 범인은 선거제도다

2000-12-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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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USA투데이 사설)

연방대법원이 12일 판결을 통해 이번 대통령선거에 기품 있고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맺고자 했다면 명백히 실패했다. 대법원의 당파적으로 갈라진 판결은 대법원 자신의 신뢰도에-이번 선거절차뿐 아니라 법원 시스템 전반에 걸쳐서-큰 상처를 입혔다.

지난주 재검표 중단을 명령했던 5명의 대법관이 또 다시 부시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관들은 재검표는 획일된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데 플로리다주 법원은 이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4명의 반대의견을 가진 대법관들이 격분하는 가운데 헌법상 정해진 시간 내에 재검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재검표 명령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에는 7명의 대법관이 찬성했다. 그러나 이는 고어가 합법적인 당선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도 법원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바람에 낙선하게 됐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번 결정을 공정하다고 볼 사람은 별로 없다. 대법원 결정은 또 근소한 차이의 선거에 있어서 헌법상의 정해진 시한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검표 문제에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한 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허송해 버림으로써 결국 재검표할 시간적 여유가 없게 만든 점에 대해서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다음 선거를 앞두고 선거제도에 대한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는1월 플로리다주 투표중 검표가 되지 않았던 분량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검표가 실시되고 그 결과 고어가 승리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부시는 결국 법원의 실수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셈이 된다.

이번 5주일 동안의 대선 추태의 주범이 연방대법원은 아니다. 대법관들로서도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부시나 공화당이 주범도 아니다. 법원이 판결을 뒤집어 고어가 승리했더라면 그들도 끝까지 승복하지 않고 물고 넘어졌겠지만 일단 그들이 사태를 주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어와 민주당의 잘못도 아니다. 그들은 "만약에…"라는 가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법원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일단 대법원 결정이 내려지자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한 실수가 있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범인은 선거제도를 애매하게 방치해 온 정부, 특히 플로리다 주정부다. 만약 다음에 이같이 근접한 선거 결과가 나온다면 이번과 같이 5주일 동안 법석을 떠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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