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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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민의 언어

2000-12-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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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란 (LA카운티 검사)

우리는 때로 일자리와 삶에서 과로와 피곤 그리고 좌절을 경험한다. 마치 군인들처럼 해뜨기 전에 일어나 기계적으로 옷을 입고 식사를 마친 다음 차를 몰고 일터로 간다. 타임카드 찍는 것으로 일을 시작하고 마친 뒤 어두워진 다음에야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면 아이들은 벌써 잠든 지 오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나날이 계속되는 어느 날 우리는 문득 삶에 있어서 윤기와 정열을 잃어버리고 만 것을 발견한다. 우리의 가슴은 차가워지고 말았다. 물론 우리에게 단기적 목표는 있다.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물질들 말이다. 값비싼 독일제 차와 이태리제 옷으로 치장하고 나서면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당신을 부러워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같은 기쁨은 쉽게 사라진다.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우리는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우리가 평생에 걸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결국 이렇게 지친 몸으로 죽어가기 위해서란 말인가"라는 회의를 갖게 된다. 이는 모든 사람이 조만간에 느끼게 될 우울한 기분이다.

지난 주말까지 나의 인생관은 건조했었다. 지난 주말 내가 다니는 영락교회의 멕시코 극빈자 돕기 선교봉사에 동참했다. 국경 넘어 30분 거리의 티화나로. 우리 교회는 한달에 한번씩 식품, 장난감, 의류 등을 가지고 멕시코 봉사를 간다. 거기에는 의사, 치과의사, 약사, 이발사 등도 동참하며 1세와 2세 그리고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내가 무엇을 찾기 위해 봉사에 동참했는지 모른다. 빈민들을 도울 만한 특별한 기술도 갖고 있지 못하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던 상태도 아니었다. 티화나 방문도 처음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부스스한 눈으로 모인 일행은 3대의 밴에 나누어 타고 티화나로 떠났다. 가는 도중 나는 줄곧 잠만 잤다. 나는 비교적 안락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끔 우리를 다운타운 스키드로 지역으로 데리고 가서 어렵게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줬다. 그러나 티화나의 끝없는 판자촌은 스키드로와는 비교가 안될 점도로 비참했다. 우리가 탄 밴이 포장도 안된 울퉁불퉁한 길을 먼지를 풀풀 날리며 덜컹거리고 달리는 동안 나의 마음은 긴장이 됐다. 여기저기 비실비실 여윈 개들이 이질감을 더해 줬다.


차가 마침내 작은 예배당 앞에 멈춰 서자 어른과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가 우리를 맞았다. 이따금 원조물자를 가지고 나타나는 한인들을 맞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깨진 유리창에 실내장식도 형편없는 예배당에 앉아 내 기분은 더 울적해졌다. 재래식 화장실에 하수시설 조차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 숙여 이곳을 찾아와 도울 기회를 준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 곳에는 법복도 재판정의 의사봉도 판사도 없었다.

흥미 있었던 것은 나는 ‘브로큰’ 한국말을 했고 나이든 장로와 집사들은 ‘브로큰’ 영어를 했으며 우리 모두는 ‘브로큰’ 스패니시를 했다. 이날 소통된 언어는 ‘Kor-Span-glish’ 쯤으로 표현해야 옳겠다. 그러나 문화적, 언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통용이 될 수 있는 언어가 한가지 있었다. 바로 사랑과 연민의 언어다. 우리가 왜 그곳에 갔는지를 설명할 필요는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나이든 한 할머니가 익숙하게 시키는 대로 다른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햄버거를 정신 없이 구웠다. 무덥고 땀이 났다. 300여개의 햄버거를 만들었고 수백, 수천정의 약품과 연고를 나눠주었다. 의사들은 간이 치료대에서 진찰을 했고 섞은 이를 뽑고 충치를 때워주었다. 영어, 한국말, 스패니시를 모두 구사하는 한 백인 여인이 환자들과 의사들 사이에서 통역을 전담했다. 마치 전시의 이동 외과병원 같은 분위기였다.

마지막 환자의 진찰을 끝내고 의료장비를 밴에 실은 뒤 미국으로 돌아오는 우리는 분명 떠날 때와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나는 땀에 절은 채 더럽혀진 옷에 극도로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마음만은 그지없이 행복했다. 칭찬을 받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러브 티화나’에 참여한 다른 자원 봉사자들 가운데도 그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자원 봉사자들은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돈버는 일만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때로 일상을 벗어난 문제와 과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 나라와 해외에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의 사고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문제에만 시야를 제한시킬 것이 아니라 눈을 번쩍 떠야 한다. 이 세상을 보자. 우리의 사랑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선교봉사단에 참여하라고 부탁하지는 않겠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연민과 사랑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이웃, 학교, 교회 그리고 당신의 가족들 중에도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의 안락함에서 벗어나 연민과 사랑의 잠재력을 발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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