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지 않은 눈물

2000-12-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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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조환동 (사회부 차장대우)

지난달 29일 앤젤레스 내셔널 포리스트에서 자신이 몰던 차 트렁크 안에서 불에 탄 변사체로 발견된 이태홍(31)씨 살해사건은 사건의 여러 가지 정황과 잔학성, 또 피해자가 전직 국무총리의 사위였다는 점에서 한인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LA카운티 검시국이 차안에서 발견된 시신이 이씨라고 사건 발생 일주일이 된 지난 6일 공식 확인했고 유족의 오열 속에 8일 장례식이 엄수됐지만 12일 현재 용의자 윤곽은커녕 사건 동기나 배경 등이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 자식과 사위를 졸지에 그것도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잃은 가족의 슬픔을, 또 범인(들)이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이 느끼는 불안감을 제3자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씨의 시신이 확인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 5일 만난 이씨의 부모들은 모든 것이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아들이 반드시 생존해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한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동안 시종 흐느낀 이씨의 어머니 강정숙씨는 "웬 청천하늘에 날벼락"이냐고 울부짖으면서 "성심이 여리고 착한 아들이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이나 언행을 한 적이 결코 없다"고 말했다. 기자의 손을 꼭 잡고 계속 "우리 자식은 살아 있겠지요. 절대로 죽지 않았겠지요"라고 물어보는 어머니의 눈망울이 떠올라 6일에는 차마 부모에게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 강씨는 장례식 내내 극도의 충격과 슬픔에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정도로 탈진, 통곡을 하다가 결국 실신했다.

이번 사건은 많은 의문점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큰 의문점은 이씨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정적이고 성실한 이씨가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경찰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씨 사건을 단순 강도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원한으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도 없다.

한인사회 최대의 참극으로 기록되고 있는 유희완씨 일가족 4명 피살사건이 미제로 남은 채 9년이 지났다. 또 지난 90년 이후 현재까지 LA지역에서 발생한 한인 피살사건 130여건 중 20%가 사건의 동기나 용의자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은 채 미궁에 빠져 있다. 이번 이태홍씨 사건도 이같이 ‘미제 범죄 통계’에 포함되지 않기를 유가족과 한인사회는 바라고 있다.

경찰의 신속하고 집중적인 수사로 범인(들)이 체포되고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는 길만이 아들을 잃은 어머니 강정숙씨와 유족들이 흘린 눈물이 진정으로 마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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