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잘못된 여권운동에 멍드는 남자아이들

2000-12-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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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

남아선호 사상은 가부장제와 역사를 같이 하는 인류의 뿌리깊은 관습이다. 동서고금 어느사회건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사내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좋은 대접을 받았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해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 나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수적 시각에서 여권운동을 진단해온 철학자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의 신간 ‘남자아이들에 대한 전쟁: 잘못된 페미니즘이 우리의 청년들을 어떻게 해치는가’가 문제의 책이다.

미국에서 지금은 남자아이로 자라기에 좋지 않은 때라고 소머스는 서문에서 말한다. 학교가 남학생들에게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차별받고 무시되고 억눌린 가엾은 존재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소머스의 주장이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센세이셔널한 보고서 발표, 미디어들의 여과없는 보도, 여권운동진영의 로비에 따른 연방교육부의 여성차별 금지정책들로 지난 10여년 사이 여학생들의 입지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그러나 드센 페미니즘 돌풍의 이면에서 남학생들은 점점 구석자리로 내몰리고 있어 이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더 이상 여자아이들이 아니라 남자아이들이라고 소머스는 주장한다.

소머스에 의하면 여학생들은 기가 죽기는커녕 점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학생들이 성적도 더 낫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더 높으며 학생회, 우등생 클럽, 학교신문, 토론클럽과 같은 조직에도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학력면에서의 성별 차이를 볼 때 독해력이나 쓰기의 경우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 비해 평균 1.5학년이 뒤져있는 상태다. 대학진학률도 여학생이 앞서서 지난 97년 풀타임 대학재학생은 남학생이 45%, 여학생이 55%였다.


게다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공격성이 사회문제의 근원이라며 남자아이들에 대한 교육법을 바꿔야 한다는 남성개조론을 펴고 있는 데 이것은 전혀 문제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라고 소머스는 진단한다. 청소년 범죄사건이 터질때마다 여권운동진영은 남성의 공격성과 폭력성의 증거라며‘남자’라는 성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몰아부치는데 이같은 사회 분위기가 남자아이들을 더욱 주눅들게 만든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같은 추세로 나가다가는 남자가 머지않아 ‘제2의 성’이나 ‘2등시민’이 될테니 교육계를 비롯한 사회가 늦기 전에 우리의 아들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소머스는 밝혔다.

남자아이들이 희생자라는 주장을 펴며 소머스가 주 공격대상으로 삼은 인물들은 90년대 이후 미국 교육패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유명학자들. 그런 만큼 소머스의 이번 책은 지난 여름 출간되자 마자 불뿜는 찬반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소머스는 여학생들에게 편향적인 최근 미국의 교육방침은 90년 캐롤 질리건에 의해 불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버드대학 교육대학원의 여성학 교수인 질리건은 90년 ‘미국 10대 소녀들의 위기’라는 보고서를 발표, 여성운동권의 전폭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내용은 가부장적 남성중심 문화로 인해 소녀들이 10대중반이 되면 자신감을 잃고 주눅이 들어 제2의 시민으로 전락한다는 것. 이 내용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11살에는 자신만만, 16살에는 혼란’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면서 미즈 재단,미국대학여성협회등 여권옹호단체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들 단체의 관심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주눅든 여학생들의 기를 살려줄것인가. 유사 연구들이 연이어 발표되었고, 여자아이들을 부모의 직장에 데려가는 ‘딸들 직장데려가기’가 연례행사로 만들어진것도 이같은 흐름의 일환이었다.

소머스의 주장은 질리건이 여학생들을 피해자로 들고 나온 90년은 이미 여학생들이 남학생을 앞지르기 시작한 때라는 것. 여학생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보고서에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기에는 조사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같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주장이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쳐 90년 내내 ‘소녀들 자긍심 고취’가 학교들의 주 관심사가 된것은 여성단체들의 센세이셔널한 홍보결과라고 소머스는 보고 있다.

소머스의 두 번째 공격대상은 윌리엄 폴락. 폴락은 하버드의과대학 부설정신과병원의 남성센터 담당 교수이다. 98년 ‘진짜 소년들’이란 책을 쓴 폴락은 공격적이고 지배적 성격의 남성문화가 자라나는 소년들에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중산층 소년들이 불안증, 소외감 같은 증상으로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가부장적 남성문화에 비판적인 그의 견해는 진보적 여권운동가들 서클에서 처음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99년 4월 콜로라도의 콜럼바인고교 총격사건이 터져 10대 남자아이들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그의 주장이 전국의 학교들에 파급되기 시작했다. 질리건과 폴락 지지자들의 주장은 현 남성문화는 문제가 있으니 남자아이들을 전혀 다르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 말하자면 남성의 여성화이다.

이같은 주장들에 대해 소머스는 우리의 아들들은 지극히 정상인데 오늘날 교육이 잘못되어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60년대 이후 자유방임적 교육방식이 주의집중력 떨어지는 남자아이들에게는 특히 맞지 않는다는 것. 남자 청소년들의 행동상 문제들은 남성의 타고난 공격성이 문제가 아니라 도덕교육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학교가 학생들의 자율성에 너무 맡기다 보니 결과적으로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도덕적 가치관도 상실한 아이들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교사가 권위를 갖고 엄한 규율하에 학생들을 지도하는 전통적 교육방식이 재도입될 때 남학생들의 학력부진, 청소년기 비행문제는 해결될수 있을 것으로 소머스는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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