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니까 거기에 겨울이 와 있었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슬며시 불청객처럼 찾아와 어느새 거기 있는 12월, 해마다 6, 7월이면 한해의 반이 훌쩍 가버린 아쉬움에 한숨쉬다가 오히려 12월이 오면 세월의 무상함도 잊어버리고 흥청거리는 명절 분위기에 동승해서 술렁거리게 되고, 집집마다 반짝거리는 각양각색의 장식들에 혼을 빼앗겨 어쩌다 밤 운전이라도 하게 되면 한참씩 차를 세우고 피터팬이 되어 꿈속을 날아다니곤 하는 나는 아무래도 자라지 않은 아이인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12월은 추억과 회한이 많은 달이다.
모두가 불안했던 한국의 겨울, 데모, 휴교, 화염병의 아픔도 이때만큼은 방학과 추위로 잠시 잠재우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과 가난한 선물 꾸러미로 행복을 맛보던 시절, 눈이라도 오는 날은 가슴은 마냥 부풀고 공연히 할 일이 많은 것 같아 부지런히 장갑을 끼고 쏘다니다 이름 없는 다방에서 뜨거운 차 한잔에 언 몸을 녹이면 이 세상 어디쯤에 내가 있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아득한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했었지.
불안한 미래에 절망하면서도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에 꿈을 꾸는, 그래서 젊음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가?
행복이든 슬픔이든 그 한가운데에 자신이 있을 때는 남들이 보는 것만큼 느끼지 못한다.
상식적인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도 그 속에 갈등과 눈물이 있고, 먹을 것이 없어서 매일 몇백명씩 죽어 가는 아프리카 오지에도 순간순간 그들만의 행복은 있다.
불행했으나 행복했고 초조했으나 꿈이 있었던 그 때의 겨울로 한번만 돌아가고 싶다.
눈 대신 비가 내리는 캘리포니아의 12월. 지난 열한달의 사연을 품어 안고 새로운 한 해의 희망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어머니 같은 12월. 소멸하며 다시 태어나는 12월. 붉은 포인세티아가 난무하는 12월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