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시 대세론

2000-12-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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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오기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명장으로 위문후를 도와 당시 초강대국 진나라를 쳐서 5개 성을 함락시켰다. 이같은 오기가 버티고 있는 위나라를 진나라든, 어느 나라든 감히 엿보지 못했다.

문후가 죽은 뒤 무후가 뒤를 이었다. 이와 함께 새로 관직이 생겼다. 국정을 총괄하는 재상직이었다. 오기는 그동안 세운 공로로 보아 그 자리가 자기에게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재상직에 올랐다.

전문이라는 사람이다. 오기는 못마땅하게 생각해 전문에게 말을 걸었다. 장수로서 국가를 지킨 공로나, 주변의 강국들이 감히 위나라를 넘보지 못하게 한 공로나, 또 실무 행정가로서 실력이나 누가 한수 위냐는 게 오기의 지적이었다. 전문은 모든 면에서 자신이 오기를 따를 수 없다고 시인했다.

그런데 어떻게 재상직이 그에게 돌아갔는가 하고 오기가 따졌다. 전문이 되물었다. 나이 어린 군주가 새로 즉위해 정치적으로 불안할 때 사람들은 누구를 더 신뢰하겠느냐는 게 전문의 물음이었다.

위로는 군주에서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안도와 신뢰감을 주어 상하를 하나로 묶는 데에는 자신이 전문에게 도저히 못 미친다고 생각한 오기는 그 면에서는 자신이 한수 아래임을 시인했다. 전문이 말했다. "이것이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앉게 된 까닭이오" 그때야 오기는 자신이 전문에게 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일이란 반드시 실력대로만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제 아무리 능력이 있고 준비가 돼 있어도 때를 얻지 못해 좌절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어서다. 때문인지 때를 얻어 순조롭게 풀린 영웅보다는 때를 못 얻어 실패한 영웅이 더 많은 게 인간사 기록이다.

5주째 혼미를 거듭해온 미국의 대권 쟁탈전이 조지 W 부시 승리로 대세가 기운 느낌이다. 부시 대세론이 세를 얻으면서 천하 쟁패극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반반으로 쪼개진 미국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초당적 입장에서 화해와 조정을 외쳐온 부시 같은 인물이라는 데서 출발한 게 부시 대세론으로 이제는 다수가 공감하게 된 것이다.

부시 대세론 확산에는 현실의 정치적 역학구조도 한몫 거들었다. 플로리다주나, 연방의회에서 공화당이 모두 다수여서 만일의 경우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할 때 같은 공화당인 부시를 선출할 것은 뻔한 이치이니만큼 ‘헌정이라는 독’을 깰 상황까지 갈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현실론이 부시 대세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앨 고어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선거다. 전체 국민투표 득표율에서 앞섰다. 플로리다주에서도 절대로 지지 않았다는 게 고어의 믿음이다. 그런데 수차례 공식 개표 결과 한번도 승점을 못 올렸다. 거기다가 이제는 대세를 뒤집을 시간도 없다. ‘때를 얻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 2000년 미 대선은 고어가 천시(天時)를 얻지 못한 천하 쟁패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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