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북단체 끌어안기 점진적이어야

2000-08-18 (금)
크게 작게

▶ 사설

LA 한인회와 평통간의 다툼으로 시끄럽던 올해 8.15 기념행사가 일단 무사히 끝났다. 그동안 한인사회 그늘에 묻혀 지내던 친북단체들이 한인회등 한인사회 주류단체와 함께 광복절 행사를 치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범민련과 재미동포 서부연합등 친북단체들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인타운내 다른 행사에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한인사회에서 이들의 활동이 점차 가시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광복절 기념행사가 보수와 친북 진영이 자리를 함께 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재향군인회등 단체들은 이번 광복절 행사에 같이 참여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름만 걸어 놓고 정작 행사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한국인의 국경일인 8.15 행사장에 그동안 한인사회에서 온갖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오던 보수단체는 빠지고 친북단체가 한인회장등 주요 단체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은 너무나 급격한 변화로 오히려 어색해 보인다.

한인사회에 북한쪽 입장을 두둔하는 조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이 모두 조국이라는 이들 단체의 주장은 대다수 한인의 생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공산화로 집과 재산을 뺏기고 월남한 실향민이나 북한의 남침으로 가족이 희생당한 한인들에게는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 남북 정상이 악수를 하고 남북간 화해 무드가 무르익고 있는데 해외에서 같은 한인끼리 생각이 다르다고 싸울 이유는 없다. 통일과 관련해 북한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밝힌 권리는 있다. 그렇다고 한인사회 소수세력에 불과한 친북단체를 주류단체와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인사회 실상에 맞지 않으며 대다수 한인 정서에도 어긋난다. 그쪽에서는 한인사회 친북단체 수가 20여개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름만 있을 뿐 실제로 1인 단체거나 별 활동이 없는 곳도 많다.

남북한 관계는 가변적이다. 지금은 평화무드에 젖어 있지만 언제 돌발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한인 주요 단체가 성급히 친북단체를 끌어안는 것은 오히려 한인들에게 혼란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 진보단체와의 손잡기는 한인사회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