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은 사람을 소송하면

2000-08-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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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 에피소드

▶ 키 한/ 팔로스 버디스

미국은 소송의 나라인지 걸핏하면 소송한다는 소리가 누구의 입에서나 쉽게 나오기 때문에 아무리 법치국가라고는 하지만 어떤 때는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작년인가 한번은 동부의 어느 주에 살고 있는 주민이 하나님을 소송하여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얻어냈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는데, 사연인즉 이 주민이 외출하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집에 마른 벼락이 떨어져 집이 전파되어 망연자실 하면서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마저 와서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기 보다는 “아마도 무슨 죄를 지어도 단단히 지은 대가로 천벌이 내린 것이 아니냐”는 투로 비아냥거리는 데에 발끈하여 “아무 죄도 없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벼락을 내린 것은 하나님의 실수이며 잘못”이라고 하나님을 고소하게 되었고, 이를 접수한 법원판사는 이 주민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는데 이유는 피고가 불참하였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이런 소송은 차라리 애교라도 있지만, 지난주 어느 낯선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듣게 된 하소연은 참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었다.


이 지역에서 부동산업을 하다가 얼마전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신 모씨가 자신의 남편이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그 부인은 그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 어느 미국사람 집의 리스를 맡아서 테넌트를 구해 주고 커미션 500달러를 받은 후에 뒷마무리를 다 하지 못한 채 돌아 가셨는데, 며칠전 집주인인 그 미국사람이 자신에게 전화를 하여 “에이전트인 너희 남편이 일을 다 마무리 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내가 커미션으로 준 500달러중에 300달러 나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소액 재판소에 제소하겠다!”라고 위협을 하니 어찌 했으면 좋겠느냐고 난감하고 황당한 목소리로 하소연 하였다.

듣다 보니 나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아마도 그 집주인이 돈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면 무척이나 돈에 쪼들리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간에 그 요구가 너무 지나치고 아마도 그 미국사람이 우리가 소수민족인데다 영어마저 서투르니까 얕잡아 보고 그런 말을 한 것 같아, 마음을 가라 앉힌 후에 차근차근 그리고 항목별로 조목조목 사리를 따져서 물어 보았더니 일을 다 못 끝낸 에이전트에 대한 집주인의 요구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요구를 본인이나 그의 회사가 아닌 미망인에게 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내가 대답을 알려주었다. “부인! 그 집주인이 전화를 하면 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세요! 아니! 부인이 직접 이렇게 대답을 하세요! “집주인 아저씨! 우리 남편을 소액재판에 소송해서 이기세요! 그리고 이겨서 남편한테서 돈 300달러 받아 내세요! 그 다음에 저한테도 전화해서 어떻게 돈을 받아 냈는지 좀 알려주세요! 왜냐하면 나도 아이 양육비 하며 내 생활비를 좀 청구해야 하니까요”라고 대답하세요” 그제서야 부인의 목소리도 안심한 듯이 좀 가벼워지면서 “키 한씨 고마워요! 그 집주인하고 통화한 후에 다시 또 연락 드릴께요!”라고 대답하였다.

전화를 마친 후에 옆에 놓여 있는 식은 커피잔을 마저 비우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따가운 햇볕 속에 한가로이 서있는 야자수 너머로 8월 한여름의 오후가 무르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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