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촌지(寸志)는 촌심(寸心)

2000-08-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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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소리

▶ 노스리지<선기훈>

오늘 아침, 하루의 일과를 준비하는데 안면이 있는 청년이 불쑥 들어와 포도 한 상자를 내려 놓았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잠시간 멍하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유인즉, 지난 번에 자기에게 너무 잘 해 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란다. 그 일은 단지 청년이 머리를 돌릴 수 없이 아프다는 이유로 내원했을 때 침을 놓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두고 두고 기억이 나서 오늘에야 오게 되었다며 촌지를 전해 왔다. 그때가 벌써 1년도 휠씬 넘은 일이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기에 적잖은 당황감이 앞섰지만 잊지 않고 찾아온 그 청년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얼마 전 촌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촌지란 감사의 표현에 대한 자신의 마음 씀씀이가 부족함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한 감사의 표현이 곧 돈이나 물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촌지의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 상자의 포도가 산을 움직이고도 남을 만큼의 큰 사랑으로 내게 느껴졌다면 그야말로 더 없는 촌지가 아니겠는가. 더욱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하신 계명을 몸소 실천해야 할 믿음의 사람들이 촌지에 열을 올려서 덕 될 것이 무엇일까? 온종일 마음을 가볍게 해준 그 청년에게 고마움의 촌심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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