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같은 한인인데...

2000-08-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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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황성락 (사회부 차장대우)

한국전쟁 발발직후 헤어진 아버지와 50년만의 만남을 기대했던 신문재씨. 8월15일 서울에서 그동안 풀지 못한 한을 한껏 쏟아내려 했던 신씨는 역사적인 상봉이 이뤄지는 동안 LA 자신의 집에서 TV 생방송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작 자신이 그 역사의 한 주인공이 될 것으로 생각했건만 부자의 만남을 다음으로 미룬 신의 결정에 가슴이 아파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그나마 9월과 10월에 상봉이 더 있을 것이라는데 희망을 걸고 있지만 이번처럼 기대가 컸다가 오히려 실망이 더 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고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언론에 너무 많이 보도된 것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앞으로는 부자상봉이 확정될 때까지 자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인타운에 위치한 ‘재미 남가주 이북오도민회’에는 15일 아침부터 전화벨이 그치지 않았다. 모두가 가족을 북에 두고온 실향민들로 미국시민권을 취득했다는 것 때문에 이번 상봉단 선정과정에서부터 제외됐던 사람들이었다. "같은 한인인데 왜 시민권자는 제외시키느냐" "언제 우리도 상봉단에 포함될 수 있느냐"등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이들은 밤새 TV와 라디오를 통해 상봉소식을 접하고 흥분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과 다름이 없다"는 직원의 답변에 결국 맥없이 수화기를 놓아야 했다.

이처럼 서울과 평양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은 한인사회에도 단연 최고의 관심사항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아닌 관객이 된 이곳 이산가족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자신의 처지가 더욱 서글프기만 할 따름이었다.

"언제쯤 자유롭게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이들에겐 이제 막 시작된 남북관계의 변화속도가 더디기만 할 뿐이다. 그나마 최근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획기적인 결정들을 취하고 있는데 작은 희망을 걸고 있지만 나이도 이젠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생이별의 아픔을 가슴 깊이 간직한채 반세기를 살아온 이들에게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소감을 묻는 것이 오히려 죄스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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