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모 자식은 1촌, 부부는 무촌

2000-08-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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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이다. 그러나 사람의 신체반응은 묘한 데가 있어 너무 기쁘면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나온다. 또 너무 슬프면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경우가 있다. 이 두가지 역현상은 인간이 스스로 컨트롤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극단의 반응이다. 눈썹과 눈 사이에는 땅콩알 크기의 눈물샘이 있다. 이 눈물샘은 뇌와 연결되어 있어 너무 기쁘면 신경 컨트롤이 안돼 수력발전소의 수문이 일제히 열리는 것처럼 눈물을 마구 쏟아 놓는다. 이래서 ‘하염 없는 눈물’이 생겨나게 된다.

새삼스럽게 눈물이 왜 나오는가를 설명하는 이유는 서울과 평양에서 펼쳐진 이산가족 상봉현장이 눈물바다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너무 기쁘다”면서 웃지 않고 통곡을 하니 왜 울게 되는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

제일 많이 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부모와 자식지간이다. 다음이 형제자매 상봉이고 그 다음이 부부상봉이었다.


북에서 내려온 김희영씨(72)는 50년만에 남한의 아내 정춘자씨(70)를 만났으나 정씨는 재혼한 몸이었다. 기자가 두 사람에게 소감을 묻는 장면이 TV에 비쳤다.

김희영씨-본처야 항상 잊을수 없지 뭐. 그러나 나는 아내가 재혼한 것을 이해합니다.

정춘자씨-세살 먹은 애 데리고 여자가 도저히 혼자 살수 없더라구. 더구나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50년 동안 수절한 여성도 있다. 남쪽의 이춘자씨(70)는 북에서 내려온 남편 이복연씨(73)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면서 그 동안 자식들을 기른 고생담을 털어 놓았다.

가장 눈물 겨운 드라마는 평양에서 펼쳐졌다. 남한의 최태현씨(70, 인천 거주)와 북쪽의 부인 박택용씨(72)의 재상봉-두사람이 만나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재혼한 최씨가 금가락지 한쌍을 주머니에서 꺼내 50년 수절한 박씨에게 끼워주는 장면은 정말 드라마였다. 더구나 이 금가락지는 남쪽의 부인이 북쪽의 부인 갖다 주라며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최씨는 “북녘의 아내는 그 동안 시부모와 아이들에 시동생 넷까지 뒷바라지 했으니 이루 말할수 없이 고생했을 것이고 남쪽의 아내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선물까지 챙겨 주게된 것”이라고 목메어 했다.

그러나 이 부부간의 재상봉도 순수한 부부의 재상봉이 아니라 자식들이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되어 있음을 알수가 있다. 자식없는 부부 상봉은 한 케이스도 없다. 부모와 자식지간을 1촌, 형제자매를 2촌, 그리고 부부지간을 무촌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것이 남북이산가족 상봉이다.

부모자식간인데도 아들이 어머니를 안만나겠다고 피한 경우도 있다. 북한인 서울 방문단 인솔단장 류미영씨(78)다. 류씨는 전외무장관 최덕신씨의 부인이며 광복군 사령관으로 독립운동을 한 류동열씨의 딸이다. 최덕신씨와 류미영씨는 23년전 월북했는데 서울에 사는 아들 최인국씨(53)가 어머니를 안보겠다며 피해 버렸다. 최씨는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정보기관에 시달려 왔으며 자신들을 버리고 월북한 부모들에 대해 한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과 친지들이 설득중이라니 떠나기 직전 만나게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남북이산가족들의 극적인 상봉장면을 TV에서 보며 느껴지는 것은 “너무 늦었구나!” 하는 아쉬움이다.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고 알츠하이머(치매증)에 걸려 못알아 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상봉 며칠전 숨을 거둔 사람들도 있다. 왜 진작 이들이 서로 만날 수 없었던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에 분노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숨길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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