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

2000-08-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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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Utopia)의 어원 가운데 하나는 무소(無所), 즉 「어디에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곳이 바로 이상향(理想鄕)이다. 이상향은 그 실제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내가 지금 있는 이곳 말고 항상 내가 없는 다른 곳에 있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언제나 가볼 수 없는 바다 넘어가 아니면 올라 갈 수 없는 산꼭대기, 또는 명왕성 부근 어느 우주 한구석이다. 완벽한 삶만큼이나 완전한 현상 또한 희귀한 일임을 누가 모르는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성 때문인지, 열심히 노력만 하면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유토피아인 것으로 우리 머리 속에는 박혀있다. 신기루 탓일지는 몰라도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그 속을 향하여 힘닿는 대로 뛰도록 운명 지워졌다. 이렇게 해서 상상이 인생의 강박관념으로 변하고 유토피아주의(Utopianism)는 인류의 진보에 영감(靈感)작용을 하게 된다. 이곳이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상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 즉「이곳」이「그곳」으로 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약속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유토피아를 추구한다는 가면으로 그와는 정반대 현상(dystopia)도 적지 않게 보아왔다. 유토피아적 비전이 얼마나 많은 엄청난 공포와 악몽을 인류에게 맛보였던가. 파쇼와 공산주의도 그 허울은 유토피아의 추구였으며 사교도(邪敎徒)들의 집단 자살이나 각종 테러조차도 그 허상은 유토피아 구현이었다. 수많은 경우 절대악을 절대선의 빗나간 시도로 보게까지 된다. 결국 모럴이 결여된 유토피아는 독재나 파멸과 상통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사회학적 유토피아는 노동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즐거움이 되고 세상의 모든 골칫거리는 봄볕에 눈 녹듯 손쉽게 풀리는 현상일지 몰라도 개인적 유토피아 귀결점은 행복이라는 애매 모호한 상황이 아닐까? 특히 행복의 추구를 목숨과 자유만큼 인간의 기본권리로 주장한 미국의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nce) 규정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점을 유별나게 강조해 준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미국 헌법에 들어 있다고까지 믿는 사람조차 있으나 실은 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은 아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기만 하다. 육체적 감도로만 행복의 도수를 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격과 행동의 합리적 만족으로서 행복을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만족한 성적 경험을 달성했을 때, 그리고 아름다운 사물이나 작품 또는 자연을 보고 느끼는 만족 등 육체적 센세이션에서 오는 희열이 행복이라고 보는 쪽이겠고, 후자는 인생을 관조하면서 삶의 가치를 이루었다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때를 행복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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