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나지나 말 것을

2000-08-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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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차라리 안만나는 게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그러면서도 헤어질 때의 언니 모습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Y씨는 여중시절, 요즘으로 치면 여고시절 단독으로 남하했다. 피난생활을 거쳐 결혼을 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온 게 근 20년전이다. 나이가 들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더 사무치게 그리운 게 북한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 Y씨는 마침내 소원을 이루게 됐다. 북한 브로커의 주선으로 언니와 조카들을 만났다.

"만난 장소는 중국이었어요. 만나기 전까지 그 기대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막상 언니를 만나니 말이 잘 안나와요. 언니에게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모진 세월 살아왔다는 게 첫 눈에 느껴져요."


그런데 조카들은 전혀 피붙이같은 느낌이 안들더라는 게 Y씨의 말이다. 난생 처음 보는 이모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직 선물 보따리에만 눈이 쏠려 있더라는 것이다. 얼마후 못볼 꼴을 Y씨는 보게 됐다고 했다. 잠시 방을 비운 사이 그렇지 않아도 줄 선물인데 조카들이 서로 싸워가면서 선물을 훔치더라는 것이다. Y씨는 얼마나 힘들게 지냈으면 저럴까 가여운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나도 시침을 떼는 모습에 차라리 안만난 게 날뻔 했다는 생각도 들더라는 것이다.

C 목사도 혼자 월남한 케이스다. 수년전 북한에 들어가 형님을 만났다고 했다. "우리는 당과 수령님 덕분에 잘먹고 잘산다. 외국 생활에 고생이 많았겠구나." 근 반세기만에만나는 형님, 그 형님이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돼 나타나 미처 뭐라고 말이 나오기도 전인데 형님이 먼저 이같이 판에 밖은 듯이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감시원이 눈에 안보일 때 C목사가 "형님, 하나님 믿지요" 물었더니 그때서야 형님의 눈이 축축해지면서 "암! 믿지."라며 끄덕이더라는 것이다.

C 목사의 말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내 직업이 목사라고 하니까, 조카들이 토론을 하자는 거예요. 주체사상을 가지고 기독교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겠다는 거죠. 눈을 똑바로 뜨고 달려드는데 솔직히 말해 정이 떨어집디다. 혈육이란 생각이 안들어요."

분단과 함께 생이별의 아픔을 겪어온 남북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이번 이산가족의 상봉 일정은 3박4일. 너무나도 짧은 만남이다. 이번 만남은 어떤 만남이 될까. 너무나 달라진 혈육의 모습이 또 다시 한으로 남게 되는 만남이 될까, 아니면? 어찌됐든 너무나도 아픈 만남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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