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대방의 입장이 되자

2000-08-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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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

▶ 이기영<뉴욕한국일보사 주필>

뉴욕의 맨하탄과 같은 복잡한 도시에서는 교통난이 심해서 길을 다닌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심의 건널목에서는 자동차와 행인이 뒤엉켜 혼란이 대단하다. 우회전을 하는 자동차가 신호를 받아서 돌고 있는데 푸른신호를 받은 행인들도 건널목을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차나 사람이나 모두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인이 볼 때는 자동차가 행인을 제치고 회전하는 것으로 보이고 운전자가 볼 때는 행인의 물결이 밀려들어 자동차의 회전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이처럼 입장이 다르면 생각이 다르다. 추운 겨울에는 여름이 빨리왔으면 하지만 여름이 되면 더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사람이다. 요즘처럼 에어컨을 사용하는 계절에는 유난히 더위를 타는 사람과 추위를 타는 사람이 각각 원하는 에어컨 온도가 다르다. 배가 고플 때와 배가 부를 때의 생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부자가 아무리 이해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정말로 알지는 못한다. ‘과부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말처럼 사정이 같을 때만 제대로 알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 주변에는 남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이 자기의 생각대로 해 주기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꼭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사람도 있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인에게는 자기 이익에만 급급하는 습성이 어느덧 몸에 배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은 생각하는 겨를이 없게 되었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의 발단이다.


우리의 가정생활에서 발생하는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불화,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 부족 등은 대부분이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하고 자기의 입장만 내세우기 때문에 생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 것도 알 수 있게 된다.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세대가 다른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라디오의 주파수에 맞게 다이얼을 맞추어야 뉴스가 나오든 노래가 나오든 한다. 엉뚱한 주파수를 맞춰놓고 노래를 듣겠다면 그처럼 바보같은 일은 없다. 상대방의 주파수를 내가 맞추어야지,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적 문제인 노사대화도 주파수를 맞추는 노력 없이는 풀어갈 수가 없는 문제들이다. 이 처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를 알고 난 후에는 그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해주면 된다.

고객이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살 때는 꼭 그런 물건이 필요해서 사는데 엉뚱한 가짜나 불량품을 속여 판다면 상대방의 입장에 맞지 않는 일이 된다. 자기가 남을 속인다면 자기도 남에게 속을 수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라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문제가 생길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온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남이 나의 사정을 알아준다면 얼마다 고맙게 생각하겠는가. 나와 상대방을 조화시키는 타협이 쉽게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이해심을 악용하는 나쁜 사람이 있어서 하나를 주면 둘을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사람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한 ‘자기의 잣대’로 이런 억지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다만 상대방을 이해하는 ‘상대방의 잣대’가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 이제부터 모든 일을 상대방의 입장에 한 번씩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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