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닭 잡아먹기’ 이제 그만

2000-08-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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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얼마전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한 C씨는 평소 해오던대로 변호사에 케이스를 의뢰했다가 단단히 혼이났다. 보험회사 조사관이 C씨가 최근 수년사이 여러차례 교통사고를 당한 점과 몇 년전 직장에서 허리를 다쳐 종업원상해 보험금을 탄 사실까지 들추어 내가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바람에 변호사와 상의끝에 보상금 청구를 포기하고 말았다.

"옛날 같지 않아요. 보험회사에서 무조건 돈을 내주지 않을 뿐더러 조목조목 따지고 들고 1,000달러 이상의 치료비는 받기도 어렵습니다"

척추신경의 K씨의 말이다. 과거에는 교통사고가 나면 무조건 변호사를 사서 보험회사에서 적잖은 보상금을 타내는 것이 관례였다. 치료비를 부풀리고 자동차 수리견적도 부풀려졌다. 재판으로 가면 판사나 배심원들이 약자인 보험 가입자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보험회사측에서는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나도 어차피 재판에 가봐야 질 확률이 높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합의에 응해줬다. 사람들이 실제 피해 이상으로 보험금을 타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비싼 보험료를 냈으니까 사고가 나면 최대한도로 타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를 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마이너리티 인구가 늘면서 교통사고 케이스의 부풀림이나 부정이 심해짐에 따라 관계당국에서 교통사고 부조리 근절에 나섰다. 수사 결과 허위조작된 케이스가 많이 발견됐고 이에따라 재판부의 인식도 바뀌게 됐다. 그래서 요즈음은 재판에 가면 - 특히 마이너리티가 개입된 케이스의 경우 - 보험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따라 과거에는 웬만하면 합의에 응하던 보험회사들이 배짱을 튕기기 시작했고 보험금 지급도 한결 인색해졌다. 그 바람에 한인타운내 PI와 변호사들이 타운을 떠난 사람이 많고 교통사고 전문의사들도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PI는 private investigator의 이니셜이다. 글자 그대로라면 사설 탐정쯤의 의미인 셈인데 실제로는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돼 교통사고등 케이스를 물어오는 브로커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지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면 경찰보다 빨리 현장에 나타나는 것이 PI다. 피해자를 의사에게 보내주고 사고차량을 고치도록 정비업소를 소개해주는 등 편의를 돌봐주고 케이스를 맡는다. 법적으로는 PI가 아닌 변호사가 맡게 돼 있지만 실제로 케이스 처리를 하는 것은 이들이다. 잘나가는 PI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거꾸로 변호사를 고용하기도 했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사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을 부풀려 타먹는 것은 ‘제닭 잡아먹기’다. 보험금을 부풀린만큼 보험료가 올라가고 결국 운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교통사고가 나면 "돈벌게돼 좋겠네"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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