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의 힘

2000-08-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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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타운 악습 남 헐뜯기

▶ 최종윤 (수필가)

이스라엘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청년이 ‘랍비’를 중상모략하고 다녔는데, 깨달은 바 있어 하루는 ‘랍비’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빌었다.

‘랍비’는 청년에게 새의 깃털로 속을 넣은 베개를 가지고 와서, 안을 자르고 그 깃털을 바람에 날려보낸 다음 다시 찾아오도록 일러서 보냈다. 청년은 ‘랍비’가 시킨 대로 한 다음 “이제 제 죄가 깨끗이 씻겨졌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때 ‘랍비’는 “거의 다 되었네”라고 대답한 후 “자네가 해야 할 일이 한가지 더 남아 있네. 가서 깃털들을 주워오게”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데요” 하고 청년은 난색을 표했다. “이미 바람에 다 날려보냈는데요.” “바로 그렇지” 하고 ‘랍비’가 대답했다. “네가 이미 저질러 버린 일을 후에 가서 아무리 고쳐 보고 싶어해도 네 말 한마디로 인해서 끼쳐진 피해를 회복시킨다는 건, 이미 날아가 버린 새 깃털을 다시 주워 모으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라네.”

탈무드에 나오는 일화로 중상모략을 경계한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말의 효력을 증명하는 예이기도 하다. 히브리어에는 “말” 이라는 뜻을 가진 용어 중에 ‘드바림’ 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물질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지기도 하며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성서에도 하느님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했다고 쓰여 있으므로 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 3절에 의하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을 만들거라’ 하시니 빛이 생겼도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말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의 말을 함부로 하고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평소 남에게, 또 남에 대해 잘 모르고 행하는 말들이 그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리란 것을 잘 알면서도, 좋은 말을 골라 쓰는 일보다는 옷을 고르고 화장품을 고르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수양이 부족한 사람들의 바르지 못한 언행은 그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인 자신도 해를 입는다. 정신과 의사 안토니오 우드는 누군가를 나쁘게 얘기함으로써 그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게 되고, 그 말 내용이 부정적일수록 상대방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뿐 아니다. 이때 느끼는 소외감은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며, 심하면 정신분열증 환자로까지 발전한다니 미친 사람(정신병자)이 되지 않으려면 남의 험담을 함부로 하고 즐길 일이 아니다.

사회적 측면에서도 교양 있는 언어생활은 절실히 필요하다. 거르지 않은 말은 증오, 또는 살인까지도 불러일으켰으며, 편견에 가득 차고 잔혹하기까지 한 거친 언행은 우리 사회를 계속 병들게 하고 있다.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남의 약점을 찾아다니는 파리 떼 같다. 파리는 늘 더러운 곳에서만 휴식을 취한다. 만일 누가 종기를 앓고 있다면 그 사람의 다른 모든 성한 부분은 제쳐두고 종기에만 앉으려 할 것이다.

어느 청년이 길을 가다가 냇가에서 스님이 여인을 겁탈하는 모습을 보고는 격분하여 몽둥이로 스님을 때려 숨지게 했다고 한다. 청년이 정신을 차린 여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잘못하여 물에 빠져 죽게 된 것을 스님이 구해준 순간이었다고 한다. 실정법에서는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모르지만 청년의 경솔함이 좋은 일을 한 스님의 목숨을 빼앗아 가버렸다.

말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사실을 확인도 않고 타인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말이란 자고로 총알이 들어 있는 권총을 다룰 때만큼이나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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