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짜인 것을…

2000-08-08 (화)
크게 작게

▶ 미국인이 본 한국 한국인

장모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가 1978년이었다. 지금처럼 여행자를 위한 정보가 많지 않았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한국사람이 별로 없을 때였다. 처음 비행기를 타보시는 장모님에게 비행기 안에서 음식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것을 아무도 일러주질 않았던 것 같다.

장모님은 비행기표를 산 후 얼마 안되는 돈을 20달러짜리로 바꾸어서 한복 바지 속에 꿰매어 가지고 오셨다. 스튜어디스가 와서 음료수와 음식을 주문하라고 하는 것을 눈치로 대강 알아차리신 것 같다. 그녀의 경험으로 한국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할 때 승무원으로부터 식사를 사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복 속에 간직하신 달러를 쓰지 않고 딸에게 주기 위해 눈을 감으신 채 잠자는 척하면서도 점심을 주문하시지 않으셨다 한다.

스튜어디스가 뭐라고 영어로 쏼라 쏼라 하면 아마 음료수를 파나보다 하고 고개를 흔들거나 아예 눈을 감고 잠자는 척 하셨다. 영어로 쏼라 쏼라 하는 스튜어디스에게 안 먹는다는 대답으로 고개를 저으면, 스튜어디스는 더 이상 음식을 팔려고 하질 않고 상냥하게 웃으면서 다른 손님들에게 음식을 주문받았다.


식사시간이 되면, 맛있는 냄새가 그녀의 시장기를 더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거의 14시간의 비행 시간을 꼬박 굶고 오신 것이다. 곁에 있는 미국사람이 끊임없이 먹으면서, 먹어 보라고 권하는 기색도 없더라고 하셨다. 말 듣던 대로 미국 사람들은 이기적인가 보다 하고 혼자 짐작하면서 딸이 그런 나라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살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배고픔을 달래기도 하였다 한다.

한복을 입은 장모님이 지친 모습으로 공항 세관을 거쳐 나오셨다. 아내와 장모님은 부둥켜안고 울고 웃고 하는 인사가 끝난 후, 아내가 장모님에게 처음으로 잡수어 보신 미국음식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장모님은 돈이 아까워 사먹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몇분 동안 한국말로 모녀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내가 깔깔 웃으면서 비행기 안에서 음식이 공짜인데 굶으신 것을 어머님에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함께 비행기를 탄 사람들은 계속 나오는 음료수와 음식을 먹으면서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꼬박 굶으면서 온 것이 억울하신 지 “아이고 죽겠다”하시면서 어이없어 하시는 장모님과 우리들은 함께 웃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맥도널드에 들러 장모님의 첫 서양음식으로 햄버거를 사드렸다. 배가 한참 고프셨던 장모님은 미국 음식이 맛있다고 하시면서 잡수셨다. 어머님이 미국 음식 때문에 고생하시지 않을까 걱정하였던 우리들을 오히려 놀라게 하여 주었다. 오래 전에 일어났던 장모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설명하기에 좋은 예화이기에 나는 성경 공부를 가르칠 때 지금도 가끔 써먹는다. 은혜로 사는 우리는 그저 감사하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마치 비행기 안에서 음식을 거저 받아먹으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영양분이 공짜인 것을 모른 채 영적으로 굶어 죽어 가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값에 음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음식값을 자신이 치러야 하는 줄 알고 굶고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영생의 삶이 공짜라는 것을 모르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장모님의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