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사들의 진료거부 역겹다

2000-08-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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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의견

▶ 김철회<법정통역사>

한국에서 의약분업 실시 사흘째인 3일 전공의(인턴·레지던트)에 이어 전임의(펠로우)들도 7일부터 파업에 동참키로 해 대형 병원마다 수술중단과 외래 진료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전공의·전문의 파업사태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곳 미주에서 그야말로‘바다 건너 불구경’식으로 처음 의사들의 진료거부 때에 느꼈던 “이런 일도 있을 수가 있나?”하던 어리둥절함을 벗어나 이제는 역거움과 분노를 느낀다. 전장에서 부상당한 적군도 치료하는 것이 의무인 의사들이 국민들의 고통과 생명의 위험에 등을 일제히 돌리고 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을까? 외국의 의사들이 ‘국경 없는 의사들의 모임’을 통하여 의료봉사가 필요한 곳이면 지구 어느 구석이든 어떤 열악한 상황이든 달려가 목숨을 내어놓고 봉사를 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기껏 이런 행동 밖에는 못하는 걸까? 제 아무리 좋은 말로 겉치장 하더라도 이것이 의사와 약사 사이의 밥그릇 싸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의사들도 자녀들이 있을 터인데, 과연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행동을 자식들에게 설명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더욱이 의업은 대를 잇는 직업으로 그 전통이 길지 않은가?

한 발짝 떨어진 이곳에서 우리가 보는 한국의 경제는 지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노사정 간의 현명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제2의 IMF 사태가 도래할 긴박한 가능성이 문외한의 눈에도 보인다. 소득 면에서 최고 수준에 있는 의사들이 그들만의 집단이익을 위하여 진료거부로 밀어 부치고 정부가 다시 한번 양보를 한다면 그 다음에 벌떼처럼 일어날 가난하고 배고픈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슨 낯으로 거부할 수 있을까? 단 2년반 전 근로관계법의 치졸한 처리 (또는 불처리) 직후에 IMF 사태가 발생했던 것을 그들은 벌써 잊은 걸까?


전문직중 의사만큼 길고 힘든 교육 및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는 직종은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회의 최고 지성으로, 그들이 일하는 지역사회에 무게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지도자급으로 인정 받는다. 그들이야말로 민주사회를 실제로 움직이는 막후 협상과 로비를 통한 영향력 행사를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아니한가? 현대 사회의 법률이란 계속해서 변경, 발전을 거듭하게끔 되어 있다. 국회가 이번 회기 이후 폐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수준으로 스스로를 비하하여 생명을 담보로 줄다리기를 하다가 일생을 두고 자식들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할 우를 범하기보다는 다음번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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