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물의 역사를 끝내려면...

2000-08-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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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이산가족 상봉

▶ 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40여년전 할머니의 초상때의 일이다. 그렇게 많은 어른들이 한꺼번에 소리내어 곡을 하는 것을 처음 목격한 나는 놀랬다. 그리도 슬피 울던 사람들이 일단 곡하는 시간이 끝나면, 밤을 새며 화투장을 돌리며 웃음의 꽃을 피우는 것에도 또 한번 더 놀랐다. 그 이후 우리는 눈물과 한의 민족이라고 칭할만큼 많은 눈물의 광경을 목격해왔다.

이제 조국의 8월엔 온 민족이 눈물바다를 경험할 것이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별의 고통의 속에서도 남에서 그리고 북에서 각기 다시 새 보금자리를 꾸미고 살아온 이들, 생이별의 고통속에 반세기동안 생사도 모른채 그리움 속에서 애간장을 태워오던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있게된다.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누이들, 사랑하는 이들이 만나게 된다. 사별이었더라면 체념과 망각의 늪속에 넣어 두고 살았을 것을, 멀쩡히 살아서 헤어진 아내를 남편을 자녀를 어이 잊을 수 있었겠는가. 심봉사의 "어디보자 꿈인가 생시인가"의 절규도 견우직녀의 애간장타는 하룻밤의 만남도 어찌 이들의 상봉에 비할 것인가.

눈물과 한의 역사는 길고 길었다. 고구려의 패망으로 당으로 끌려간 유민의 이산가족에서부터, 백제가 망해서 왜국에 끌려간 선조들의 이산가족, 그리곤 발해국이 쓰러져 흩어진 이산가족, 원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진 처녀 총각들의 이산가족, 임진왜란시 왜국에 끌려간 이산가족들과 그리고 미처 상봉도 해보지 못하고 떠난 민족분단의 이산가족들까지 천년 이산가족의 한도 이날 8.15의 감격에 증폭되리라. "니미 하마 나  이즈시니이까"의 야속함도 "니믄 나  ㅅ량하더이다"로 풀리리라. 만나서 하나되는 기쁨과 잃어버린 세월의 야속함을 함께 울어대는 8월은 진정 우리민족의 눈물의 달이 되리라.


점잖게 악수하며 만찬석상에서 덕담을 늘어놓던 남북회담을 시청하며 가슴 뭉클해지는 정도의 감동이 아니다. 눈물바다를 이루고 엉엉 소리내어 울며, 부등켜안고 뒹굴고, 얼싸안고 몸부림치며 울어대는 진한 색깔의 영상이 온세계인의 망막속에 투영될 때가 다가온다. 이 한많은 해후의 장면을 지켜보는 남과 북이, 해외동포들이, 그리고 온세계가 덩달아 눈물을 흘릴 것인즉, 대한의 사내대장부들도 일찌감치 수분섭취를 많이 해놓아야겠다.

"어머니, 여보, 아버지, 장하다, 건강해라…, 또 보자…" 하며 만나서 한바탕 울고, 그리고 다시 헤어지느라 울고선, 돌아서며 다짐해 볼일들이 있다. 북으로, 남으로, 미국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다시 현실에 돌아와서 마음속 깊숙이 다짐해 볼일이 있다. 반일 혹은 반미의 적개심을 키울 것은 아니다. 약소민족의 설움이라고 자기비하로 끝날 것만은 더욱 아니다. 바로 나와 우리들 자신속에서 변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숙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파업, 실력행사, 반미, 반일, 지역감정, 노벨상수상 저지운동" 그리고 또 극한투쟁 등등의 미움으로만 가득찬, 갈등만으로 넘치는 하루하루를 다시 시작할 것인가? "호화관광, 원조교제, 병역비리" 등의 사치와 탈선 탈법으로 신문지상을 채울 것인가?

아니면 사랑과 각성으로 가득찬 나의 삶의 변화, 우리 사회의 변화와, 민족의 성장과 변화로 연결되는 새로운 하루하루를 맞을것인가? 온세계가 바라보는 무대에서 어머니의 깊은 주름위에 흘러내린 사나이의 굵은 눈물이 약소민족과 울보들의 삶을 보여주는 정도의 의미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이제는 정말 우리가 새롭게 단결하고 대화하고 통일까지도 이루는 인내와 끈기를 보여주는 자랑스런 민족으로 성장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눈물을 씻고 돌아선 후의 행동에 달려있다. 역사가 반복하는 이유는 역사속에 사는 우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하기 힘든 인간이 변할 기회가 바로 눈물을 닦은 후이다. 눈물의 역사가 반복할 것인가의 여부는 눈물을 닦고나서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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