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켓업주와 첵캐싱

2000-08-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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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으로부터 폭행 당해 숨진 마켓주인 노경옥(58)씨의 비극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 하고 있다. 여성이 괴한에게 주먹으로 얻어맞고 숨진 예가 극히 드문 데다가 남편인 노종국씨가 남가주 한인회 부회장을 지내는 등 LA의 올드타이머에 각종 모임 사회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법없이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이었는데…"

"고생고생 하다가 이제 좀 살만하니까 그렇게 됐네"
노경옥씨의 비보를 듣는 친지와 이웃들이 맨 먼저 하는 말이다.
노씨 사건은 마켓이나 리커를 운영하는 한인들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쫓아나가지 말라"
이것은 마켓, 리커 업주가 외우고 있어야 할 10계명 중에서도 제1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되돌아서 고양이를 문다고 하는데 하물며 강도나 흉악범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7-11 마켓에서는 종업원이 범인을 쫓아나가면 해고시키는 경우까지 있다. 잃어버리는 것은 돈 몇푼이거나 맥주 몇병이지만 사람이 다치면 회사측으로도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쫓아나가는 것은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다.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손해 본 것은 월말 결산 때 손실 처리하면 된다는 비즈니스 철학이다. 맥주 훔쳐 달아나는 깡패들을 쫓아나가다가 목숨을 잃은 한인들이 여러 명 있다.

그러나 쫓아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열받으면 컨트롤이 안된다는 것이 업주들의 이야기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바보취급 당하는 것 같아 약이 오르게 됩니다. 이 친구가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런 짓을 하나 하는 인격적 모욕을 참지 못해 반사적인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켓을 15년 운영하고 있는 K씨의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범인을 쫓아나가지 않으려면 도를 닦는 자세로 마음을 비우고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K씨는 덧붙였다.

따지고 보면 노경옥씨가 당한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은 첵캐싱이다. 마켓에서 첵캐싱을 하면 가게의 위험이 몇배 높아진다. 미국인들이 경영하는 마켓이나 리커스토어보다 한국인 경영의 경우 강도가 잦은 것은 바로 이 첵캐싱 때문이다.

불법이민의 물결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고 의사당에서 토론이 벌어졌을 때 플로리다주의 어느 하원의원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꿀이 없으면 파리가 모여들지 않는다"고.

리커나 마켓을 경영하는 한인 업주들은 첵캐싱 문제를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첵캐싱을 꼭 해야겠다면 시큐리티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하며 ‘쫓아나가지 말 것’ 이외에 한가지를 필수적으로 더 추가해야 한다. 그것은 ‘혼자 있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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