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떡밥’ 불감증

2000-07-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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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

▶ 정찬열<남부한국학교장>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저수지 한쪽에 자리를 잡으시더니 떡밥을 먼저 뿌리셨다. 고기가 모이도록 미끼를 던져놓으면 처음엔 떡밥을 먹기 위해 모여든 고기가 결국은 낚시에 걸리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말씀이 일리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근래에 한국의 어느 유명 탤런트의 어머니가 라스베가스에서 1,000만달러짜리 잭팟을 터뜨렸다 하여 신문에 연일 화제가 되었다. 그 돈을 원화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고, 세금은 얼마를 내야 되며, 평범한 월급쟁이가 그만큼을 벌려면 몇년을 일을 해야 하며, 그 돈을 어디에 쓰려고 한다는 등 연이어 보도가 되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한국 정부에서 도박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가해 라스베가스에 한국인의 발걸음이 비교적 뜸해지는 이 시기에, 그것도 한국인 유명 인사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한인을 유혹하기 위한 도박업계의 음모라는 얘기까지 등장했다.

도박에 관한 얘기가 매스컴에 등장하면 할수록 라스베가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증가하게 될 터이다. 당연히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이 도박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주간지는 물론 일간지까지 덩달아 이 일을 끊임없이 미주알 고주알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매스컴의 보도 자세가 과연 올바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그것을 끊기가 힘든 것처럼 도박에 맛을 들이면 그곳에서 헤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한다.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결국은 모든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도록 절제할 수 없는 것이라니, 오죽했으면 ‘단 도박모임’이라는 것까지 생겨났겠는가.

도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물론 각 개인이 스스로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게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도박장으로 유인하는 유혹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보도를 보면 한국인만큼 통크게 도박을 하고, 통크게 잃은 사람들도 흔치않다고 한다. 한국인이 없으면 장사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도 한다. 많은 도박장에서 한인 담당부서를 두어 한국인을 유치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새로 문을 연 이곳 한인타운과 가까이 위치한 어느 도박장에선 한인단체 행사에 무료로 장소를 대여하고 일정액의 보조금까지 지급하면서 한인의 발길을 잡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한다.

실제로 그 도박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어떤 한인 단체는 이미 그 장소를 빌려 기금모금 행사를 치른 적이 있다. 또 다른 어느 단체도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다. 적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우리 모두 한번쯤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1,000만달러 가까운 잭팟 상금도, 무료로 도박장을 빌려주고 보조금까지 지급해 주는 것도 모두가 떡밥이다. 고기를 잡기 위한 떡밥에 다름 아니다. 저들이 어디 손해 날 장사를 할 사람들인가. 1,000만달러 잭팟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라스베가스로의 유혹을 느낄 것이며, 지척에 도박장이 생겨나고 있다니 얼마나 한인들이 도박에 빠져들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떡밥을 던져 놓고 낚시에 걸려들기만 기다리는 저들의 속셈이 내다보이지 않는가.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단속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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