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의 두 얼굴.

2000-07-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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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의 세상읽기.

▶ 권정희 편집위원.

연세대학교에서 오래 교편을 잡은 호러스 언더우드박사가 한국인에 관해 재미있는 관찰을 한 적이 있다. 언더우드박사는 1885년 한국에 파견돼 서울에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경신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미국 북장로회 소속 언더우드선교사의 증손. 1세기가 넘게 5대째 한국과 인연을 맺고 사는 선교사 집안 출신인 만큼 한국인에 대한 그의 이해는 깊다. ‘안과 밖’(In and Out) 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잡지에 소개된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갖는 가장 보편적인 첫 인상은 두가지다. 하나는 한국인은 믿을수 없을 정도로 공손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다는 것”

똑같은 한국이 ‘동방예의지국’도 되고 ‘동방무례지국’도 되는 데 그 차이는 순전히 보는 사람이‘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 말할수 없는 친절의 호사 속에 빠지고, 친구없이 혼자 거리에 나가‘우리’의 ‘밖’의 존재가 되면 그때 감수해야 하는 불친절과 무례는 또 이루 말로 할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가치관이 자유나 평등등 추상적 이념에 맞춰져 있고 개인을 존중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사람 혹은 인간관계에 가치가 맞춰져 있고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데 따른 결과라고 그는 분석했다.


언더우드박사의 관찰이 가슴에 와닿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한국에 가서 유사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모국방문 기회를 주는 데 아이들이 갔다와서 보이는 반응이 극과 극이다.

우선 ‘인심좋고 친절한 나라’한국의 경험.
“고모집에서 며칠 묵었어요. 그런데 몇번 인사 나눈 것밖에 없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선물을 주는 거예요. 친구의 조카가 먼곳에서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한국사람들은 뭘 주는 걸 참 좋아해요”- 2년전 한국을 방문한 한 여대생의 말이다.
“한국 가서 친척들을 찾아뵈니 보는 사람마다 용돈을 주는 겁니다. 한국사람의 인정이라는 게 이런 것이로구나 싶고 얼굴도 모르던 친척들이 금방 가깝게 느껴졌어요”- 20대 중반의 한 청년은 한국인의 푸근함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친척, 친지들과의 만남, ‘우리’라는 온실 안에서의 한국경험이다. 미국에서는 별다른 뿌리의식 없이 자랐는 데 “한국에 가보니 내 뿌리가 거기에 있더라”고 감격을 털어놓는 2세들도 있다.

반면 그들이 단순한 미주교포로 거리에서, 택시 안에서, 시장에서 겪는 무례는 때로 불쾌함의 수준을 넘어선다. 2년전 한 대학의 한국어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어느 여대생은 “어디를 가든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교포’라는 말에 진저리가 났다”고 했다. 어학연수 친구들 다시말해 코리안 아메리칸들끼리 다닐 때의 경험이다.
“택시를 탔다하면 빙빙 돌아서 5분 거리가 20분이 되고, 시장가서 우리가 물건을 고르기만 하면 금방 값이 올라가요. 그러다 안사고 그냥 가기라도 하면 ‘교포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욕설을 퍼붓지요. 정말 모욕적이었어요”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여권도 한국여권을 쓴다는 이 여학생은 “미국에 살 때 나는 코리안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한국 가보니 나를 한국사람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고 배신감을 표시했다.

이민1세들에게 한국인의 불친절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자란 우리 2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 같다. 연세대 외국어학당이 여름 어학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한국·한국인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 데 65%가 ‘한국인은 불친절하다’고 답했다. 그들의 불친절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문제다.

단일민족, 단일문화는 한국의 큰 자랑이지만 편협성과 배타성을 약점으로 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젊은이들이 한국의 부정적 측면을 전혀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국의 인정많고 푸근한 긍정적 경험이 더 많도록 부모가 배려를 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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