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별난 강도 이야기.

2000-07-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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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스토어를 하던 몇 년전 나는 별난 강도를 당했다. 할로윈 3일전 오후 네시경이었다. 다섯시가 넘으면 이웃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차가운 맥주를 몇 깡통 사기위해 가게에 들르고, 우리는 하루의 장사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 시작된다. 나는 쿨러에 맥주를 가득히 채워 두었고, 아내는 계산대 앞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누군가가 가게 안에서 “움직이지 마! 움직이지 마!”하고 고함을 지른다. 깜짝 놀라 보니 어떤 자가 할로윈 가면을 쓰고 앉은뱅이 걸음으로 가게 안에 들어와 권총을 아내쪽에 겨누고 있다. 그는 나에게 총구를 돌리고 “엎드려! 엎드려!”하고 외치며 아내에게는 “돈! 돈!”하고 손을 내민다.

그는 몹시 서두르고 있었다. 이런 강도는 위험하다. 서툰 짓을 보이면 그는 쏠게다. 목숨은 단 하나뿐, 하찮은 돈 몇푼을 지키기 위해 비명횡사의 추한 죽음은 어리석은 짓, 경찰에게 잃어버린 만큼의 범죄신고서를 받아 세금공제를 받으면 된다. 우리는 이미 몇번의 권총 강도를 당한 경험이 있어 그가 시키는 대로 순종했다. 아내는 나보다 더 냉정하고 담담했다. 이미 그렇게 훈련되어 있었다. 아내는 계산기의 서랍을 열어 돈을 모아쥐고 강도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길게 느껴지던 두렵던 순간이 끝나자 나는 허탈해졌다. 이렇게 고난을 당하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이민생활이 슬펐다. 경찰이 오고, 필름을 다시 돌려보고, 경찰이 몇가지를 질문했지만 강도는 가면을 쓴데다가 우리는 확인되지 않은 심증을 섣불리 말할 수도 없었다. 그뒤 경찰로부터 아무런 통지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 사건은 잊혀가고, 그 이듬해 할로윈이 지난 어느날 우리는 뜻밖의 일을 겪는다.

10여년전 우리 가게 이웃의 고등학생이었던 스티브가 가게에 들렀다. 스티브의 어머니는 멕시칸이었는데 내가 가게를 시작했을 무렵 사모안 남편과 이혼하고 보조 간호사로 병원에 근무하면서 남매를 기르고 있었다. 30대 중반으로 서글서글하고 애들이 원하면 외상을 주라고 우리에게 부탁했던 그런 사이였다. 그들이 이사를 가서 오랫동안 못 보았는데 그 애가 30대 청년이 되어 사촌이라는 사모안과 함께 가게에 들렀다. 나는 반가워하며 어머니와 여동생의 안부를 묻고 두 사람에게 음료수를 권했다. 사모안은 두 갑의 담배를 사면서 불쑥 물었다.

“작년 할로윈 때 너의 가게에 강도가 들었지?”
“네가 어떻게 아니? ”나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얼마 털렸나?”
“한 180달러쯤 되었을게다”
그는 손에 들었던 지갑에서 100달러짜리 두 장을 꺼내어 계산대 위에 놓는다.
“미안하다. 애들한테 너는 내 친구니 손대지 말라고 일렀는데도 장난쳤어.”

나는 당황했다. 돈을 밀어 주면서 받지 않으려 했다.
“미스터 남 받아요” 스티브가 거들었다. 원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니. 나는 고맙다는 인사마저 잊을만큼 감격했다. 그들은 옛 친구처럼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그렇구나! 확실한 심증이 마음에 와 닿았다. 스티브의 사촌은 그 때 패거리의 보스였고, 드라마 속의 갱주인공처럼 폼잡던 사나이가 바로 그 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지난 18년간 리커스토어를 경영하던 지루하고 두렵던 세월 속을 용케도 빠져 나왔다. 장사 초기 남들은 총을 가지라고 권했지만, 나는 그것이 생명을 간수하기에는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거부했다. 지금도 나의 철학은 옳았다고 믿는다. 여느 한국인처럼 나도 성질이 급해, 총을 가졌더라면 반격의 기회를 엿보게 되고 원시적인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 무슨 불행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나는 은퇴했고 실존에서 홀가분해지고 싶다. 오늘도 큰애의 집에서 생후 백일도 안된 첫 손자의 해맑은 얼굴에서 너무도 곱게 피어오르는 미소를 보고 천사를 본다.

남진식<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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