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무지가 평화와 축제의 땅이 되기를.

2000-06-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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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미주 크리스찬 문협 부회장>

사람들이 쓰는 말중에 피·눈물·죽음·축복 탄생등의 의미 깊은 말들이 있다. 조국이란 한마디로 이 모든 말을 합한 어떤 말보다 깊고 뜨거운 한마디 말이다. 조국을 떠나와 살고 있는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고국을 생각만 해도 콧등이 시큰해지며 풀포기하나 돌멩이 하나까지도 애정이 간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녀올 수 있지만 내나라 땅의 흙을 밟고 살고 있지 않는 한은 늘 고향을 가슴에 안고 산다. 조국이 잘되면 우리 모두는 기쁘고 어렵고 힘들면 마음이 함께 힘들어 지는것은 당연한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의 축제분위기에 시샘이라도 하듯 의료종사자들의 사태로 시끄럽긴 했어도 여전히 모이면 통일의 열기로 북한 이야기를 꽃 피우는 것은 이곳 미국의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1950년 6월25일 새벽4시15분에 발발한 6·25전쟁이 끝이 나고 3년후 7월27일 휴전 협정이후 반세기를 맞았다. 지금도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 역엔 쓰러진 기차 한대가 50년 눈비를 맞고 녹슬어 뼈대만 남은 쇳덩이로 버려져 있는 것을 TV화면을 통해서 본적이 있다. 군사 분계선의 철조망과 비무장지대는 민족분단의 처절한 비극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라가 온통 남북정상회담의 열기로 들떠있던 그날 재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고향을 그리며 쓸쓸하게 생을 마친 84세 할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죽고나면 천하만사가 모두 부질없는 것인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나라가 통일되는 것을 보지 못함이 못내 안타깝구나. 후일 나라가 평정되어 우리의 강토가 하나로 되살아나거든 내 제삿날 밤이나마 그 소식 잊지 말고 전해주길 바란다”

중국의 옛시인 육방이 그의 자식들에게 남겨놓은 유언시이다. 이 시인의 마음처럼 유명을 달리한 할머니나 많은 실향민들의 마음도 이러 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신드롬을 앓고 있는 고국은 그 통에 발빠른 사람들이 벌써 김위원장의 안경부터 패션 심지어는 곱슬머리까지도 상품가치로 이용하고. 북한 음식이 빌딩가의 최고의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는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서의 이데올로기가 마지막 잔존해 있는 나라이다.

늦봄에 남아있는 잔설처럼 아직도 아픈 상혼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통일로 가는 길의 물꼬가 트여짐이 내일의 희망을 예감케 하기에 흥분하며 기대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것이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 평화와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수십만명의 참전용사들과 양민들 그들의 가족들을 깊이 생각해야 된다. 진정한 자유와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숙해야 될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멀지 않은 날 경원선 철원의 월정리역에 기차가 들어서고 더 달려서 금강산으로 원산 송도의 해변으로 남녘의 사람들이 관광갈 날도 아주 먼 것은 아니다.

사상적 갈등으로 인해 갈라놓은 비무장지대가 황무지인줄 알았는데 황무지가 아니라 자연의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는 보고라고 한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멸종된 줄 알았던 희귀한 야생화와 동식물류가 수백종류 살고있다고 한다.

세계 유례없는 냉온대자연 보존지역이라고 자연 과학자들은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원리에 충실한 식물에게서 인간의 무기력을 깨닫는다. 금수강산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다. 전세계의 자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민족사의 비극이 서린 비무장지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황무지가 평화를 상징하는 국제자연 공원이 되어 치욕의 역사를 지닌 고통의 땅이었지만 많은 위대한 죽음에 부끄럽지 않은 평화와 축제의 땅으로 바뀌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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