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등생의 마약 중독

2000-06-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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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경빈<간호사>

마약, 도박, 술, 담배 등에 중독이란 단어를 붙인다. 심지어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일에 몰두해 빠져 나오지 못하면 일 중독(workaholic)이라고도 한다. 중독이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 피해를 주는지 실감하지 못하며 남의 일처럼 여긴다. 특히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독자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하면서 중독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마약중독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서 구속되었다. 언론에 공개되고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한번만 선처해 달라고 애원하고 본인의 강한 결심을 공표해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었다. 이를 보면서 박지만씨의 의지의 나약함으로 결론짓기보다는 중독의 심각성을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독은 병이다. 다시 말해서 마약중독증은 의지와 노력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전문적인 치료를 요하는 병이다. K는 명문대학 1학년 학생으로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었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이제는 하루 두세 시간만을 자며 공부를 해도 전국에서 모인 우등생들과 경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컴퓨터의 천재라고 불렸던 만큼 K는 중간을 약간 웃도는 성적을 유지하는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K는 헤로인, 코케인, 술, 담배, LSD를 시작하게 되었고 약물을 사용하게 되면 현실의 괴로움을 잊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K가 사용하는 마약의 양은 한없이 늘어만 갔다. 어떤 마약을 많이 사용한 날에는 환청, 환각, 불안 그리고 망상까지 생겼으며, 심한 경우에는 주변의 친구들이 사람이 아닌 괴물로 보이기도 하였다.
마약 값을 구하기 위하여 집에 있는 물건을 내다 팔았고, 거짓말을 하며, 급한 경우에는 가족들을 식칼로 위협하기도 하였다. K는 스스로 마약을 끊으려 시도한 적이 몇번 있었지만 견디기 힘든 금단현상들로 인해서 다시금 마약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많은 한국사람들과 마찬가지로 K도 마약을 오래 사용하지 않았지만 한번에 많은 양을 사용함으로 쉽게 심한 마약중독증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결국 K는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되어 정신과에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술과 마약을 끊게 하는 치료와 동시에 마약 중독증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치료를 받았다.

결국 오랜 기간을 통해서 K는 더 이상 마약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마약으로 인하여 K의 심장근육은 영구적 손상을 입었고 기억력은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좋아하던 농구도 숨이 차서 오래할 수가 없으며, 수업에 들어가도 5분만 지나면 그 내용을 기억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제 K의 부모님들은 마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들면 들수록,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인생의 최고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자식의 마약중독 치료를 미루어 온 자신들의 지혜롭지 못함을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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