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머니와 청년의 데이트

2000-06-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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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인체 지놈사업이 완성되었다는 뉴스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의 달착륙 보다 더 위대한 일이라고 까지 평한다.
문제는 이 역사적인 과학의 성공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식하다는 점이다. ‘지놈’인지 ‘게놈’인지 발음자체에서부터 애매하다. 1916년 독일식물학자 빙클러가‘게놈’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유럽, 일본 , 한국에서는‘게놈’으로 발음한다.

그러나 21세기 생명공학(Biotech)의 수도라 할수있는 미국에서 ‘지놈’이라고 부르니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지놈’이라고 발음하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지놈사업을 성공시킨 두 주인공 벤터와 콜린스박사가 모두 미국인이기 때문에 이들이 발음하는대로 따라주는것이 학문적인 예의도 될 것같다.

지놈사업이란 유전자를 구성하는 30억쌍의 염기서열을 밝힌 프로젝트의 완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사업이 이제 시작일 뿐 당장 암과 심장병을 고치고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암등 병 치료 단계에 들어가려면 앞으로 20-30년이 더 걸려야 한다. 특히 인간 수명을 1백세 이상으로 연장하는데 성공하려면 5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전망이다.


노화방지라 … 세계 최장수로 유명한 프랑스의 장 칼망할머니(135세)가 30세의 청년에게 프로포즈할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다. 캘리포니아 연구소의 시무르 벤저박사같은 과학자는 본격적인 ‘지놈시대’에서는 인간이 1,200세까지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예언하고 있다.

100세 넘은 할머니가 20세의 체격을 가지고 30세된 청년과 데이트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눈뜨고 봐줄 수 있는 현상인가에 대해 우리는 아직 정신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 정도되면 가치의 혁명이 아니다. 가치의 재창조이기 때문에 DJ와 김정일의 악수장면 쇼크는 아무 것도 아니다. 돈 있는 사람은 젊어지고 돈 없는 사람은 늙어 보이니 ‘유전자 부자’와‘유전자 빈민’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생겨나게 된다. 성차별이나 흑백차별이 아니라 유전자 차별은 바로 인간 차별로 연결된다.

오래전 미국잡지에서 여성들에게 실시한“누구의 아이를 가지고 싶은가”라는 설문에 ‘케네디’라는 대답이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지놈시대에서는 아인슈타인 머리에, 해리슨 포드 성격에, 클린턴 체격을 가진 남자가 만들어 질 수 있다.

미인 딸을 두고 싶은 어머니들은 데미 무어나 TV 연속극 ‘허준’에 나오는 황수정을 꼭 빼 닮은 딸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유전자를 구하려면 엄청난 액수의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프로 골퍼 타이거 우즈의 유전자는 얼마나 호가할 지 상상조차 안된다. 또 머리카락에서도 유전자 추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퍼스타들은 팬 접촉을 극도로 꺼릴 것이고 권총 강도들은 돈이 아니라 이들의 머리카락을 얻는 것이 범행 목적이 될 것이다.

일본에서처럼 씨없는 수박을 생산해낸다든가 코넬대학에서 처럼 껍질을 벗겨 오래 놓아둬도 누렇게 변하지 않는 사과를 생산해내기 위해 ‘지놈’사업을 벌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놈사업은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인간의 윤리관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대리모가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가에 대해 논란이 많고 뉴저지등 여러 주에서 영리목적의 대리모를 금지시키고 있는 정도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 윤리 대립의 대표적인 예는 원자탄, 수소탄 발명이다. 인간은 핵폭탄 발명에 스스로 고민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겪는 불안과 에너지 소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개는 주인을 알아보지만 주인의 주인은 알아보지 못한다. 인간은 과학의 신비는 캐냈지만 우주의 신비는 캐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 맞춤시대’를 등장시키는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이같은 ‘지놈시대’에 어떤 윤리관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이 시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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