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뜨는 남가주, 지는 실리콘 밸리

2000-06-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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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엘 캇킨, LA타임스 기고)

지난 20년간 실리콘 밸리는 정보화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밸리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등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그 이미지가 퇴색하고 있다.

이보다 장기적 발전 가능성이 있는 하이텍 모델로 떠오르는 지역이 남가주와 워싱턴 DC, 텍사스 댈라스-포트워스 지역이다. 세곳 모두 하이텍 산업 종사인구와 생산면에서 다섯째 안에 들지만 밸리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밸리와 그 라이벌인 보스턴의 루트 128 일대는 지리적으로 좁은 공간 안에 벤처 자본가와 하이텍업체, 투자금융가들이 몰려 있다. 밸리의 경우 모든 금융 및 정보 업체가 샌프란시스코와 팔로 알토에 집중돼 있다.

반면 남가주를 비롯한 신흥 하이텍 메카는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포함하고 있다. 오렌지 카운티를 포함할 경우 하이텍 분야에서 남가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리콘 밸리를 능가한다. 남가주의 하이텍 업체는 실리콘 밸리와는 달리 한 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이 아니라 널리 퍼져 있다. 어바인 일대에만 브로드컴을 비롯해 2,000여 하이텍 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패사디나, 사우스베이, 글렌데일-버뱅크, 그리고 암젠과 넷제로사가 있는 사우전옥스등 곳곳에 주요 업체가 포진해 있다.


남가주 테크노폴리스의 특징은 연예산업의 중심지 할리웃을 끼고 있어 디지털 이미징등 뉴미디어 부분이 발달돼 있다는 점이다. 웨스트 LA, 샌퍼낸도밸리, 버뱅크-글렌데일 등이 뉴미디어 산업의 중심지다.

또 남가주 하이텍 업계는 인랜드 엠파이어의 광범위한 교통 및 창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매력 없이 보이는 이같은 부대시설이 남가주가 인터넷을 이용한 무역 센터로 발돋움하는 것을 돕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은 지역 경제의 다원주의적 발전을 자원의 낭비로 매도하고 있지만 실리콘 밸리식 모델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밸리는 하이텍 산업의 총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팔로 알토의 경우 1베드룸짜리 하우스가 75만달러에 거래되고 있으며 주택난으로 풀타임 잡이 있으면서 자기 집이 없어 노숙을 하는 사람이 1만명에 이른다.

교통도 문제다. 실리콘 밸리의 인구과밀로 인한 극심한 교통 정체현상은 95년 11%에서 98년 31%로 치솟았다. 밸리 지역 삶의 질이 떨어지면서 대학 졸업생들 사이에 그 지역으로 취직하겠다는 사람이 사라져가고 있다. 아이오와 대학생을 상대로 한 한 여론조사 결과 밸리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5%에 불과했다.

극심한 빈부격차도 밸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최고 경영자와 말단 직원간의 임금 격차는 91년 42대1에서 96년 220대1로 벌어졌다. 최고 경영자 봉급은 391%가 올랐지만 말단 직원은 오히려 6% 줄었다. 거만의 부를 누리고 있는 엘리트와 저임에 시달리는 일벌로 사회가 양분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밸리처럼 한 분야에만 치중된 지역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 정보산업이 소매, 의류, 기계등 연관산업으로 퍼져 나갈 때 이를 연계할 다른 비즈니스가 없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분야만 해도 내용을 하이텍에 쉽게 접목시킬 수 있는 남가주가 훨씬 유리하다.
디지털 시대에도 다양성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이텍 중심지와 일반 직원들이 생활할 수 있는 교외, 넓은 미개발지를 함께 갖춘 지역이 미래 하이텍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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